일본 백색국가 제외, 삼성·SK·LG ‘비상’

‘반도체·디스플레이 피해 우려’…소재·장비 다변화 전략 강화 시동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8/02 17:10    수정: 2019/08/02 17:53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제외조치에 대응해 곧바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일본 외 기업들로 공급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국내 소재·장비 업체들과도 해법 마련을 위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일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은 이날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자 곧바로 대책회의에 돌입했다.

일본 정부가 2일 우리나라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규제 조치를 결정했다. (사진=뉴스1)

대책회의의 골자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로 인해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품목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피해규모와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목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서 일본의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이후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한 부분이 없어 상황을 관망했지만,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일본의 추가 조치까지 이뤄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기 플랜을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로 인한 수출규제 품목 중 대체불가능한 것이 있는지 현재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 백색국가 제외 조치로 인하 수출규제 항목은?

일본 경제산업성은 앞서 지난 4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핵심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불화수소) ▲에칭 가스 등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들 핵심소재는 대일 의존도가 각각 84.5%, 41.9%, 93.2%에 달하는 품목으로 일본 기업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로 달라지는 수출입 절차. (자료=전략물자관리원)

일본 정부가 오늘(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내림에 따라 우리나라에 각 품목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3가지 품목 외 1천200개에 달하는 수출품목에 대해 일본 경제산업성의 사전수출 승인절차를 받게 됐다.

새로 추가되는 수출규제 품목은 민간품목 263개, 비민감품목 857개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필요한 ▲블랭크 마스크 ▲실리콘 웨이퍼 ▲공정장비 ▲공정소재 ▲센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조치를 내렸지만, 구체적인 품목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일본의 수출기업 실무담당자들도 정확히 어떤 품목이 수출통제 목록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몰라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우선은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수출규제 품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전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협회 한 관계자들도 “현재는 관련 기업들과 일본 정부가 밝힌 수출통제 품목 중에서 대체가 불가능한 것이 있는지 파악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수출입 통관 때 사용하는 HS코드 단위로만 국내 기업에게 위협이 되는 고위험 품목을 파악할 수는 없고, 실질적인 공정과정에 사용되는 장비와 소재를 모두 다 조사해봐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 일본 수출규제 나비효과, 소재·부품 다변화 가속

국내 대기업들은 그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일본 자국 기업을 포함한 국내외 기업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관측해왔다.

이는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에 나선지 30일이 지났지만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금지 등의 수급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실제로 대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 위치한 현지법인을 중심으로 구매영업팀을 활용한 공급처 확보에 주력했고, 일부 업체들과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와 장비에 대한 품목을 조사했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들과도 여러 논의를 거쳤다”며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인해 우리 대기업들이 일본 외 다른 국가의 기업들로부터 공급을 확대하는 다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국내 소재·장비업체와의 연구·개발(R&D)을 통한 소재·부품 국산화 역시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정부 역시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2천730억원의 추가경졍예산(추경)을 편성한 상태다. 이를 통해 오는 2020년부터 ▲핵심 소재·부품 개발 ▲핵심 소재·부품 성능평가 ▲소재·부품 기술개발 기반(테스트베드 등) 구축 등에 자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또 다음 주 중 구체적인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 한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정부가 정책지원을 통해 국내 소재·부품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대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이들 기업들로부터 물량을 구매해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해야한다고 본다”며 “사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단가협상이나 사후관리 측면에서 국산 소재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다”라고 강조했다.

■ ‘수출금지? 아니 수출규제’...장기화 어려워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의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가 향후 수출금지나 장기적인 공급차질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이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내부에서는 일본의 소재·장비 기업들이 한국 수출길이 막혀 시장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스1)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역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아시아 각국 지역과 (한국을) 똑같은 취급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금수 조치가 아니다”라며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미치는 영향을 전혀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앞서 3개 핵심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수출금지로 이어진 것은 사례가 없고,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은 사실도 없다”며 “이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로 인한 추가적인 수출통제도 일본 경제산업성이 해당 품목을 사전적으로 들어다보겠다는 수준에서 페이퍼를 요청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최근 반도체 현물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했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봐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국내 기업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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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와 관련해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문제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으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 정부의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소재 부품의 대체 수입처와 재고물량 확보, 원천기술의 도입,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과 공장 신증설, 금융지원 등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