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칼럼] 생각 리더십과 행동 리더십

전문가 칼럼입력 :2019/07/08 18:07    수정: 2019/09/23 11:22

이정규 비즈니스 IT 칼럼니스트
이정규 비즈니스 IT 칼럼니스트

“이 뭐꼬?”라는 화두 (話頭)가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화두를 “말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라 설명한다. 말길과 생각의 길은 논리적 사고체계를 일컫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결정한다. 경영의 세계에도 프레임이 존재한다.

대개는 창업자의 성공경험에 의하여 고착된 사고체계이다. 거듭 성공을 안겨준 사고체계에 대하여 자긍심이 높아진 대기업은 때대로 회사명 뒤에 “Way”를 붙이곤 하는데, IBM Way, Toyota Way 가 그러한 사례이다. 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대표곡 ‘MY WAY’처럼 성공한 회사의 기업문화를 품격 있게 부르는 말로 사용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자신의 생각 프레임에 들어맞지 않는 논리적 단절을 발견하곤 하는데, 이때가 끊어진 생각의 길을 이어줄 새로운 화두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의 세계에도 기대와 다른 사업결과를 보이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환경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착된 WAY 프레임은 오히려 혁신에 저항하는 화근이 되기 쉽다. 혁신적 사고에 관계된 경영학의 용어로 ‘생각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이라는 말이 있다.

생각 리더십은 끊어진 논리의 단절을 이어주는 사고 역량이다. 침체된 시장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사업 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프레임을 다시 설계하여 고객 솔루션을 새롭게 창조하는 활동이 ‘생각 리더십’이다. 문제는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생각 리더십’ 이 결코 발휘되지 못한다는데 있다.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저술한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경쟁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고객의 목소리에 섬세하게 귀 기울이며, 신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등 정말로 잘 관리되는 회사 조차도 예외 없이 시장 우위를 놓치는 불편한 현실을 언급했다. 한때는 선도적인 경쟁력과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위대한 기업조차 몇 십년이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몰락의 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날렵한 체형을 자랑하던 사람이, 몸무게가 늘면 당뇨병, 심장병, 통풍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처럼 혁신 기업도 몸집이 커지면 예외 없이 병이 든다는 그의 주장은 대기업에게 두려운 경종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코멘트는 대기업의 뛰어난 관리자가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해도 회사를 실패로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이다. 파괴적 기술에 의한 ‘논리의 불연속’이 발생한 환경변화에서 기업의 가장 뛰어난 관리자의 전략적 의사결정조차 경영실패를 막을 수 없다는 크리스텐슨의 주장은 과연 대기업에서 ‘생각 리더십’의 고양이 가능한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크리스텐슨의 주장은 스타트업의 경영자에게 고무적인 말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논리의 불연속’을 창조하는 일을 한다. 과거의 프레임으로 이해되지 않고 생존이 되지 않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사업 도메인에서는 대기업은 도대체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스텐슨은 5가지 딜레마 원칙으로 이를 설명한다. 첫째, 대기업은 기존고객을 포기하지 못하고, 투자도 기존사업에 집중한다. 둘째, 새롭게 형성된 작은 시장은 대기업의 성장욕구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셋째, 미성숙한 시장은 투자 분석을 위한 정보도 없어 투자결정은 대부분 부결된다. 넷째, 새로이 창출된 신시장 도메인에서는 조직원의 핵심역량이 오히려 무능력이 된다. 다섯째, 고객의 요구수준을 초과하는 과도한 기술공급을 경쟁력의 방편으로 집착하면서 손실을 더욱 늘린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대기업의 사고체계를 실패 프레임워크(failure framework)라 이름 붙였다.

대기업이 실패 프레임워크를 스스로 파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행히도 크리스텐슨의 답은 “거의 불가능”이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영속기업으로 꾸준히 살아 남는 일은 매우 어려운 희망사항이다. 세상을 청년이 바꾸듯이, 산업의 구조도 대기업이 아니라 거듭 출현하는 스타트업이 바꾸어 낼 것이라는 예언과 통한다. 인간 생명의 유한함이 기업 도메인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메시지이다. 결국 ‘생각 리더십’도 리더가 활동하는 기업환경의 맥락이 맞지 않으면 도움이 못 된다는 뜻이다.

관련기사

사람이 시니어가 되면 생각만 많아지고, 행동은 굼뜨게 된다. 젊은이는 지혜는 모자라지만, 행동으로 실천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생각 리더십’과 더불어 ‘행동 리더십(Action Leadership)’이 필요하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과 윈도우 GUI를 개척한 알랜 케이(Alan Kay)는“미래를 예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하는 일”이라 말했다. 생각을 앞서 하는 것보다도 과감한 창조 활동에 방점이 있다는 말이다.

한때 젊은 후배들에게 창업을 권하는 일에 주저한 적이 있었다. 수년간의 스타트업 생활을 통해 실패확률이 높은 창업의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일이 심장을 뛰게 만들어? 가슴이 뛴다면, 낭비할 시간이 없어! 너만의 길을 가!” 생각 리더십은 현상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접근을 상정하지만, 행동 리더십은 실제로 미래를 창조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젊은 세대의 행동으로 시작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 기존 프레임을 쫓지 말고, 새로운 길, 세상을 바꾸는 삶을 젊은 창업자들에게 기대하는 이유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