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계,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우려 표명

"과잉의료화·낙인효과에 따른 사회적 문제 발생해"

디지털경제입력 :2019/07/04 14:36    수정: 2019/07/05 16:38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섣불리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간주하면 과잉의료화 문제와 낙인효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로 인한 이득보다 문제가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중독심리학회가 주관하고 한국심리학회(회장 조현섭, 총신대 교수)가 후원하는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에는 신성만 한국중독심리학회 회장(한동대학교 교수)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안우영 교수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로 인해 일어날 다양한 부작용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신성만 회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결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지적했다.

신 회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위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졌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ICD-11 게임이용장애를 검토하는 과정에 참여한 19명의 전문가 중 16명이 의학 분야 전문가였다”라며 “또한 ICD-11 준비 과정에서 진행된 전문가 내부 검토가 온라인 미팅을 통해서만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졌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성만 한국중독심리학회 회장

아울러 신 회장은 “WHO가 ICD에서 질병과 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의, 임상적 기술, 진단기준, 인과 기제, 기능적 속성 등이다. 게임이용장애는 이 중 단 하나도 확인된 바 없음에도 왜 이렇게 급하게 진단명이 부여됐는지도 생각할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병인론과 병리론 관점에서 모두 명확한 판단이 서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실제로 번아웃 증후군이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와 같은 상황인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된 것은 부적합하다는 주장이었다.

무리하게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함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신성만 회장은 “외국 학자들이 게임이용장애에 섣불리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해외 학자들이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과잉진단으로 인한 진단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며 심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질병코드가 부여됐다는 사실만으로 심각하게 인식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는 중독이라는 개념에 대한 거부감이 조현병에 대한 거부감과 비슷할 정도로 큰 사회다. 게임이용장애 판정이 청소년에게 주로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청소년이 스스로를 낙인 찍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차별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회장은 게임이용장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질병코드 등재가 아닌 올바른 이용을 선도하고 지역사회 재활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은 게임이용장애와 같은 문제가 생기면 병원이 아닌 학교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다. EU는 게임이나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없애지 않고 이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미국과 노르웨이 역시 지역사회 재활 모델 관점에서 방안을 찾는다”라며 “이용자가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고 게임을 균형있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게임이용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데 질병코드는 필요 없다”라고 말했다.

안우영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후 의료계에서 약물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택할 것을 우려했다. 또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등재 되면 문제 해결에 의료계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 현 의료법의 문제를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2018년 기준 국내 정신과 전문의는 3천584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 중증정신장애인 수 약 42만 명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숫자다. 여기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정신장애인의 수는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으며 이 경우에는 의료계에서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방안을 택할 여지가 크다.

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신경학적 변화가 생기면 이를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뇌의 신경학적 변화는 어떤 행동을 해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경학적 변화가 생겼다고 이것이 약물치료를 해야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라며 “신경학적 변화는 심리사회적 치료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 약물치료보다 사회적 맥락에서의 개입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안우영 교수

아울러 “중독치료에 사용되는 약물 중에는 FDA 인증을 받은 약물도 있지만 모든 약물이 그런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약물 치료가 필요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선시되야 한다”고 말했다.

안우영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두고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이유 중 하나를 현행 의료법에서 찾았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되면 오직 의사만이 게임이용장애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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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나 심리상담도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의 의료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 각 지역에서 운영 중인 스마트쉼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심리서비스 역시 불가하게 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안 교수는 “전문가집단이 더 많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일대일 치료는 환자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게임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최선의 접근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생각해봐야 한다”고 발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