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리브라'는 공평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신뢰 회복'이 가장 큰 과제

데스크 칼럼입력 :2019/06/19 16:49    수정: 2019/06/20 13:0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소문으로만 떠돌던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페이스북은 암호화폐에 리브라(Libra)란 의미심장한 이름을 붙였다.

‘리브라’는 점성술에선 천칭자리다. 물론 천칭은 저울이다. 따라서 ‘리브라’엔 공평, 정의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에 ‘리브라’란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짐작해볼 순 있다.

잘 아는대로 페이스북은 최근 엄청난 비판에 휘말렸다. 알고리즘 문제부터 데이터 유출까지 각종 구설수에 시달렸다. 겉으론 플랫폼 중립성을 강조했지만 실제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로 돈을 벌었다. 알고리즘 조작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해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란 서드파티 앱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이미지=페이스북)

이 구설수들을 아우르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리브라의 실종’이다.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할’ 플랫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단 비판이다.

18일(현지시간) 공개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백서에도 이런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페이스북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위해 별도 자회사 ‘칼리브라’를 만들었다. 칼리브라는 메신저, 왓츠앱 같은 페이스북의 메시지 서비스와 연동된다. 또 암호화폐인 리브라를 저장, 송금할 수 있는 디지털 지갑도 제공한다.

하지만 별도 자회사를 만든 더 큰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리브라'와 어울리지 않는 기존 서비스와 거리를 두겠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이날 "칼리브라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페이스북의 소셜 데이터와는 분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데이터 유출이나 남용’ 걱정은 하지 말라는 의미다.

■ "리브라 성공하면 암호화폐 분산시대의 종말"

페이스북은 월간 이용자 24억 명에 이르는 ‘작은 지구촌’이다. 그런 만큼 자체 암호화폐를 만들 경우 기존 금융 시스템과 충돌 우려도 적지 않다. 일부에선 리브라가 ‘사유화된 IMF’라는 비판까지 쏟아내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페이스북은 리브라는 ‘소외계층 송금 서비스용’이라고 해명했다. “은행계좌를 갖지 못하는 (기좀 금융시스템에서 소외된) 17억 명이 리브라의 주타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시스템을 흔들 일은 없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페이스북이 18일(미국 현지시간) 공개한 칼리브라 로고. (사진=페이스북)

이용자 데이터를 남용한 전력이 있는 회사가 금융 서비스를 하도록 내버려둬도 되겠댜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미국 정가에선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맥스 월터스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 소위원장은 “암호화폐 개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위법 요소는 없는지, 위험한 부분은 없는지 먼저 따져보잔 얘기다. 문제 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 서비스를 추진하라는 게 월터스 의장의 요구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프로젝트’는 자신들이 독단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27개 리브라재단 회원들이 공동 운영한다는 얘기다. 내년 본격 서비스될 즈음엔 회원사가 100개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해명에도 의구심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 IT전문매체 더버지는 “페이스북이 블록체인을 디자인하고, 파트너들을 모집했다”면서 “리브라를 쓴다는 건 페이스북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된다”고 꼬집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볼 때 쉽게 믿기 힘들단 비판이다.

더버지는 오히려 “리브라가 성공할 경우 암호화폐의 분산화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다”고 지적했다.

■ 저커버그 "송금도 사진 전송처럼 수월해져야" 수 차례 강조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건 새롭진 않다. 암호화폐는 아니지만, 초기에 ‘크레딧’이란 자체 코인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또 페이스북은 최근 들어 뉴스피드가 핵심 역할을 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메신저 중심으로 바꾸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암호화폐를 활용한 송금 서비스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송금도 사진을 보내는 것만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따라서 리브라 프로젝트는 페이스북에겐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보로 볼 수 있다. 페이스북이 그 프로젝트에 공평, 정의를 의미하는 ’리브라’란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리브라가 과연 페이스북의 표방대로 ‘공정한 서비스’로 커 나갈 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 규제 기관들이 페이스북의 행보에 의구심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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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물론 리브라엔 '저울'이란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로마 시대 중량 단위는 ‘리브라 폰도(libra poundo)’였다. 여기서 폰도는 무게, 리브라는 저울을 의미한다. 영국 화폐인 '파운드'를 표시하는 £은 바로 리브라의 첫 문자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