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계좌 없는 암호화폐거래소, 퇴출 '위기'

[이슈진단+] FATF 암호화폐 권고안 영향 진단(하)

컴퓨팅입력 :2019/06/20 17:32

세계 암호화폐 산업이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됐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각 지역 금융 규제 기관들이 초강력 규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FATF가 준비하는 권고안은 암호화폐를 다루는 모든 업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디넷코리아는 2회에 걸쳐 FATF 권고안이 암호화폐 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한다. [편집자 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발 태풍이 불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비상이 걸렸다. 암호화폐에도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실명계좌가 없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퇴출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FATF는 오는 21일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새로운 권고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권고안에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재산, 수익, 자금 또는 이에 상응하는 가치로 간주하고 금융회사에 준하는 기준을 가상자산 취급업소에 적용 ▲가상자산 취급업소(암호화폐 거래소)가 법적 소재지에 신고·등록을 받도록 하고, 미신고·미등록 영업 시 처벌하도록 규정 ▲가상자산 송금의 경우, 송금·수취기관 모두 관련 정보를 수집·보유하고 권한 당국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FATF 국제 표준 권고안과 이를 반영한 국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영업을 하기 위해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이 때 실명확인 계좌를 갖고 있지 않은 거래소는 신고가 반려될 가능성이 많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암호화폐거래소는 150~20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중 실명확인 계좌를 이용하는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4곳 뿐이다.

따라서 나머지 거래소는 향후 실명확인 계좌를 받지 못할 경우 당장 영업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무분별하게 운영됐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정리될 거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실명계좌 발급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관련 규제만 법제화될 경우 암호화폐 산업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지난해 10월 '가상자산 취급업소(암호화폐 거래소)'에 국제 기준을 적용하고, 오는 6월 21일 구체적 이행방안을 주석서·가이던스에 규정하기로 결정했다.

■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법제화 추진…'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제' 도입

FATF의 국제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나라는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며,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된다. 따라서 FATF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반드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각 나라들이 권고안을 이행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암호화폐 관련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그림자 규제(명확한 관련 법이 없는데도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규제)' 개선의 일환으로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조속한 시일 내 법제화해 명시적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특금법 개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 대표 발의 법안이 G20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 국제 동향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당 법안은 ▲가상자산(암호화폐)·가상자산 취급업소(암호화폐거래소) 정의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취급업소와 거래 시, 가상자산 취급업소의 신고의무 이행 여부 추가 확인 ▲가상자산 취급업소 영업 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의무화 ▲가상자산 취급업소는 의심거래 보고 이행 위해 고객별 거래내역 관리 의무화 등의 내용을 주 골자로 한다.

가이드라인 법제화는 현재 발의돼 있는 김병욱 의원 대표 안을 포함해 유사 여러 특금법 개정안을 통합해 정무위원회 대안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금법 개정안 일부.

■ 실명계좌 발급조건 없는 특금법…"시장 축소·공정거래 위반 우려"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수리 조건이다.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금법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가 영업하기 위해서는 FIU에 신고해야 하는데,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 서비스(실명확인 계좌)를 이용하지 않는 거래소는 FIU에서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개정안은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예외적으로 신고를 수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예외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실명확인 계좌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영업 신고를 해도 허가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현재 100여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중 실명확인 계좌를 이용하는 곳은 빗썸, 코인원, 코빗, 업비트 4곳 뿐이다. 특금법이 통과된다면 나머지 거래소 대부분은 영업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실명확인 계좌가 없는 대부분의 거래소들은 '벌집계좌'라 불리는 집금계좌를 사용하고 있다. 거래소 법인계좌를 통해 고객 자금을 집금하는 '벌집계좌'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계좌를 회수할 수 있으며,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등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거래소들도 실명확인 계좌 발급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4곳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는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당국이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 기조를 드러내고 있어 은행이 거래소에 섣불리 실명확인 계좌 발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특금법이 이런 암호화폐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암호화폐의 부작용을 없애고 산업을 살리기 보다는 오히려 산업축소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기존 실명확인 계좌 서비스는 이용 가능하지만, 추가 신규 실명확인 계좌가 막힌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관계자는 "아무런 제도도 없이 거래소를 운영하는 것보다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것이 낫다"면서도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면 은행이나 금융당국이 같이 움직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CPDAX 관계자는"은행이 실명확인 계좌를 내준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특금법이 통과돼도 의미가 있다"며 "이런 상황은 장기적으로 운영할 생각이 없는, 오히려 한탕하고 빠지려는 거래소에만 기회"라고 지적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 관계자는 "현재 실명확인 계좌를 가지고 있는 거래소가 보안 이슈에서 압도적으로 잘한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실명확인 계좌를 열어주는 명확한 자격요건이 생겨, 그 요건을 맞추는 거래소들이 제도권 안에서 사업을 영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정거래 시장 형성되지 못할 수 있다" 비판도

공정거래 시장이 애초에 형성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용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금법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이미 전제돼 있는 상황 즉, 은행들이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거래 거절의 근거가 명확히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위는 부당한 거래거절 행위로 취급될 수 있으며, 정부와 은행과의 공모에 의한 불법행위로 개인의 경제활동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최근 해당 법에 미비점이 보인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해당 상임위원회에 제출했다. 최규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사무국장은 "특금법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제도권에 들여놓는다 하더라도, 실명확인 계좌를 열어주지 않는 한 신고를 수리할 수 있는 거래소 자체가 몇 개 없다"며 "먼저 국가가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거래소에 실명확인 계좌를 열어준다는 조건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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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실명계좌 발급은 금융회사의 자율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은행권 관계자는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는 금융위나 금융당국의 기조를 따르기 때문에, 당국의 신규계좌 발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지만 실명계좌 발급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며 "FATF 가이던스가 나오더라도 가상통화 관련 개정안이 통과되고 그에 따른 관리, 감독, 책임, 규정 방안 등이 만들어져야만 신규거래가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