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경제 新냉전시대와 한국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양태훈의 인사이트] 쏠림 없이 중심 잡고 실리전략 취해야

데스크 칼럼입력 :2019/06/11 15:25    수정: 2019/06/11 15:26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글로벌 기술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세계 1, 2위 경제대국 간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의 갈등은 수입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최근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에 반발한 중국이 희토류 수출제한 조치에 나설 것을 시사하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40여 년간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미중 관계에 치명적인 금이 간 모양새다. 미국은 대만을 중국과 별도의 국가라고 언급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도 깨뜨렸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절대로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셈으로 그야말로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양국이 이처럼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갈등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수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의 편만을 들 수 없는 샌드위치 신세나 다름없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반(反)화웨이 전선에 가담할 경우, 자칫 중국으로부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희토류를 공급받을 수 없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국가다. 만약 중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더한다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편에 선다면 북미 갈등으로 인한 한반도 정세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남북경협 확대를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남북관계는 다시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과 같은 형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중국 미국 국기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한 위기는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5월을 기준으로 수출규모가 전년동기 대비 각각 30.5%, 13.4%나 줄어들었고, 대중 수출악화로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반화웨이 전선에 가담할 경우, 심각할 결과를 마주할 수 있다고 강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 비중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각각 18%, 39%에 달한다. 또 이들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사실상 중국의 편에 서라는 강요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원유보다 반도체를 더 많이 수입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이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반도체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편에 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조치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전례를 고려해도 이 편이 더 현실적인 선택으로 판단된다. 우리 정부가 미중 무역갈등 상황에 대해 ‘기업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물론 반대의 입장도 있다. 중국이 글로벌 첨단기술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중국제조2025’ 정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중국과의 협력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반화웨이 전선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반도체 설계자산(IP)과 반도체 생산장비, 필수소재 등을 차단하면 중국의 정책은 실패하고,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지속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인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 연구센터장은 이런 상황을 두고, 췌장암과 같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갈등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리나라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처럼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중 무역갈등은 췌장암처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는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실익을 고려해 미중 관계에서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기업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한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은 인권문제, 대만문제, 언론자유, 종교억압, 이데올로기 대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하는 양국의 정치·경제적 배경에 기인해 수십년 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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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미중 무역갈등에 대해 과거 우리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온 역사를 고려야한다고 지적한다. 14억의 인구가 존재하는 중국이 매년 6%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술패권의 주도권은 결국 중국이 가져가는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은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기반으로 신성장동력의 육성에 나선 만큼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이 아닌 중견·중소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라는 거다. 이는 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줬지만,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와 소재 등의 핵심 기술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기술패권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세계는 이달 28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양국의 무역갈등으로 내년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0.5%에 달하는 4천500억달러가 증발할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무역갈등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있고, 자해적인 상황을 반드시 막아야한다”고 깊은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이 G20 정상회의에서 극적인 화해를 맞이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다툼은 시작됐고, 우리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초 정부는 미래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용인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과 ‘시스템 반도체 육성전략’ 등을 발표했다. 무역갈등이라는 대외적인 불확실성에 흔들리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2, 제3의 육성 전략’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