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문법이 바뀐다…구경꾼을 구독자로 유인하라

[초시대의 미디어] 다시 문제는 콘텐츠다

인터넷입력 :2019/06/07 18:19    수정: 2019/06/08 15:1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풍경 하나] 도서관 신문 진열대

도서관 신문 진열대 앞. 긴 행렬이 늘어서 있다. 스포츠신문 진열대 앞엔 특히 더 붐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앞사람 어깨 너머로 흘낏흘낏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투수가 된 날이면 행렬이 더 길게 늘어서 있다.

1990년대말, 2000년대 초까지 대학 도서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던 장면이다. 그 시절 독자들은 뉴스를 접하기 위해 신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아침 일찍 화장실에 갈 때 가장 먼저 찾는 것도 신문이었다.

■ 꿈처럼 황홀했던 시절은 가고…

언론사들에겐 더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대다수 언론사들은 수익 뿐 아니라 영향력 면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엇보다 독자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졌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랬다.

첫째. 매장 앞에 줄 서게 만들었다.

둘째. 끼워 팔 수도 있었다.

그 무렵 신문은 ‘구독상품’이었다. 묶음 상품으로 배달됐다. 언론사가 완성 상품을 내놓는 순간부터 뉴스 소비가 시작됐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빵가게를 떠올려보자. 막 구워진 따끈한 빵을 줄서서 기다렸다가 구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전 성심당이나 군산 이성당 같은 명품 빵가게를 연상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 무렵 언론사들이 '명품 뉴스'를 공급했단 의미는 아니다. 제한된 공급 덕분에 월등한 수요를 만끽했다. 언론사만 뉴스를 생산, 공급할 수 있었던 덕분에 보통 빵집들도 '명품 빵집'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더 큰 강점은 ‘끼워 팔기’다. 언론사들은 뉴스를 ‘묶음 상품’으로 판매했다. 독자들은 눈길 끄는 기사 몇 개를 보기 위해 거들떠보지 않을 기사까지 한꺼번에 구입해야만 했다. 물론 종이신문이란 아날로그 상품이 갖는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다.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음반을 한번 떠올려보라. 골수 팬이 아닌 이상, 특정 가수의 노래를 10개 가량 한꺼번에 듣는 걸 즐기는 팬은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인기곡 한 두 개를 듣길 원한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엔 낱개로 구매할 방법이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음반 전체를 구입해야만 했다.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애플 아이튠즈는 아날로그 음반 시장의 이런 문법을 파괴했다. 음원 단위 구매란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이 문법이 신문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물론 신문은 음반과는 달랐다. 독자들은 ‘유료 구매’하는 대신 낱개로 해체된 기사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 포털 덕분이었다.

(자료: 신문과방송)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그래프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미국인들의 뉴스 습득 형태 변화 추이를 그린 위 그래프가 바로 그것이다.

뉴스를 일정한 시간에 보는지, 수시로 보는지 두 가지를 조사한 그래프다. 그래프를 보면, 2007년을 기점으로 ‘수시로 뉴스를 본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월등하게 많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왜 저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리고 왜 하필 골든 크로스가 일어난 해가 2007년일까?

일단 첫 번째 질문. 일정한 시간에 뉴스를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독자들은 언론사가 상품을 생산하는 시간에 맞춰 뉴스를 소비한다는 의미다. 빵집 앞에서 따끈한 빵을 기다리듯, 신문사나 방송사가 완성품을 쏟아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뉴스를 소비했다.

하지만 모바일 혁명은 이런 풍속도를 파괴해버렸다.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한다.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건 크게 두 가지 기술 변화 덕분이다.

첫째.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묶음 상품 해체.

둘째. 모바일 혁명으로 인한 초접속 사회의 도래.

이 글 앞부분에서 소개한 [풍경 하나]는 지디넷코리아가 첫 발을 내딛던 2000년 무렵 흔하게 볼 수 있는 풍속도였다.

2007년 확립됐던 미디어 시장의 새 문법, 과연 영원할까

물론 2000년대 초반엔 ‘인터넷신문 혁명’ 덕분에 신문 시장에도 디지털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렵엔 아직 '묶음 상품 해체’란 또 다른 변화는 쉽게 보기 힘들었다. 여전히 개별 언론사 사이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뉴스 시장에서 묶음 상품이 해체된 건 2004년 무렵이었다. 그 때부터 포털이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면서 개별 언론사 브랜드는 급속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스 소비 문법이 완전히 바뀐 건 2007년 무렵이었다.

이젠 ‘왜 2007년일까?’란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 때가 됐다. 잘 아는대로 2007년은 아이폰이 첫 선을 보인 해다. 아이폰은 ‘통화 기기’였던 스마트폰을 ‘정보 소비 도구’로 바꿔놨다. 가상 키보드를 도입한 애플의 혁신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늦어서 고마워’란 책에서 또 다른 기술 변화가 2007년을 중요한 해로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사진=씨넷)

그 중 중요한 건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본격 등장이다.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였던 페이스북이 13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 2006년 9월이었다. 구글이 유튜브를 구입한 것도 한 해 전인 2006년이었다. 두 서비스 모두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날개를 폈다.

아이폰과 함께 모바일 혁명을 주도한 안드로이드가 공식 출범한 것 역시 2007년이었다.

그 뿐 아니다. IBM 왓슨연구소는 2007년 인지 컴퓨터 왓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텔은 그해부터 비실리콘 소재를 도입했다.

빅데이터 분석의 틀이 된 하둡이 시장에 등장한 것도 2007년이었다. 하둡 알고리즘은 수 십만대의 컴퓨터가 한 대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작동하도록 해줬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링크드인은 곧바로 하둡을 기반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프리드먼은 “그들이 일제히 2007년에 떠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리드먼은 2007년이 기술적 변곡점이라고 주장했다. 기술적 변곡점의 기반이 됐던 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미디어 소비 시장의 큰 틀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의 문법은 사실상 이 때 틀이 잡혔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1990년대 제기한 ‘나만을 위한 신문(The Daily Me)’이란 비전이 현실 속에거 구현된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뉴스를 찾아갔다면, 이젠 뉴스가 우리를 찾아오는 시대. 언론사 편집진보다 친구가 주변 동료들이 더 중요한 ‘뉴스 추천자’ 역할을 하는 시대. 불특정 다수가 관심 있어할 뉴스 보다 내가 관심 있는 뉴스가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시대.

이게 2019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의 기본 문법이다.

공유의 시대→ 구독의 시대로

지금 뉴스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본 문법은 ‘공유’다. 그런데 최근 그 문법이 흔들리고 있다. 공유 시대를 대표했던 버즈피드는 지난 해말 인력 15%를 감원했다.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페이스북 시대 모범생’의 위세도 예전 같지 않다.

그 뿐 아니다. 공유 시대를 열었던 페이스북조차 예사롭지 않다. 최근 들어선 아예 뉴스 공유의 기틀이 됐던 뉴스피드 대신 ‘폐쇄 소통망’인 메신저 쪽으로 비즈니스의 중심을 옮기고 있는 모양새다.

뉴스 시장을 흔들고 있는 건 이 뿐만이 아니다.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중요한 변화 바람이 또 불기 시작했다. 다시 아날로그 시대의 뉴스 유통 문법인 ‘구독’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단 점이다.

국내에선 최대 뉴스 유통 플랫폼인 네이버가 이런 바람을 조금씩 몰고 왔다. 네이버는 지난 해 5월부터 사람 대신 에어스(AiRS) 인공지능 편집을 도입했다. 그런데 올 들어 에어스 편집을 모바일 플랫폼으로도 전면 확대했다.

내부 편집진이 편집한 동일한 기사 대신 ‘개인 맞춤형 추천’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바뀐 네이버 시스템에선 ‘언론사별 구독자 수’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해외에선 애플이 조심스럽게 뉴스 구독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선보인 애플 뉴스 플러스가 바로 그 변화의 상징이다.

애플 뉴스 플러스는 월 구독료 9.99달러(약 1만2천원)에 신문 뿐 아니라 잡지 기사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서비스 개시 1개월 만에 구독자 20만 명을 돌파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언론사들도 최근 들어 구독 쪽에 많은 공을 쏟고 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뉴욕타임스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1분기 현재 디지털 구독자 360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이 중 뉴스 구독자는 290만명이며, 나머지 70만명은 요리나 크로스워드 퍼즐을 구독하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구독자 수는 뉴욕타임스 전체 구독자 450만명의 78%에 이르는 수치다. 사실상 무게 중심이 디지털 구독 쪽으로 넘어간 셈이다.

디지털 구독에 극도로 인색했던 독자들은 왜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을까? 많은 미디어 전문가들은 '넷플릭스 세대'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음악 시장의 중심이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바뀐 것도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상징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런 흐름에 힙입어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퍼블리, 북저널리즘 등 구독 모델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19돌 맞은 지디넷코리아, 스무살 생일 앞둔 다짐

그리고 2019년. 모바일 혁명에 익숙한 우리를 향해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5G로 대표되는 그 바람은 그 동안 겪은 변화보다 더 큰 변화를 예고했다.

지디넷코리아는 그 변화를 초시대(超時代)란 화두 속에 담아냈다. 초시대는 산업 뿐 아니라 우리 생활 패턴을 송두리째 바꾸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표 담론이다. 당연히 인류의 삶 전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초시대는 우리에겐 ‘3인칭 용어’가 아니다. 1인칭 주어를 붙여야 할 용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미디어 시장에까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초시대 개념도

'공유의 시대' 뉴스는 대중 상품이었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정도 유인은 있어야 했지만, 딱 그 지점까지 였다.하지만 '구독의 시대'엔 독자들을 움직일 좀 더 큰 유인이 필요하다. 다른 곳에선 찾기 쉽지 않은 정보. 한 뼘 더 들어간 정보. 그래서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꼭 봐야한 하는 뉴스. 그게 '초연결, 초융합 시대' 독자들이 갈구하는 뉴스다.

미국의 저명 언론학자인 미첼 스티븐스는 '비욘드 뉴스'에서 누구나 다 제공하는 뉴스를 생산하는 건 "공짜로 물을 제공하는 노점상들이 몰려 있는 해변에서 또 다른 노점상을 차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충분히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이 비판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다가온다. 지디넷코리아는 19년 세월 동안 국내 대표 IT 미디어로 성장해 왔다. 국내 IT 산업 발전과 함께 하면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하지만 초시대를 맞아 이젠 질적인 변환을 이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초 몇 가지 약속을 했다. 특히 대안과 통찰을 담아낸 심층 분석 강화를 새로운 경쟁 포인트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또 칼럼 같은 색깔있는 콘텐츠로 승부하겠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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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콘텐츠를 '지디넷스러움'이란 말로 표현한다. '지디넷스럽다'는 말이, 독자들의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 되도록 하는 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창간 20년을 향해 가는 올해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비판과 감시의 눈길로 우리들의 행보를 지켜봐주길 당부드린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