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강화냐 완화냐…학계, 의견 대립 심화

명시적인 규정 불필요 vs ISP 독점적 지위 고려 필요

방송/통신입력 :2019/06/07 17:31    수정: 2019/06/07 17:37

‘망중립성’을 두고 학계의 의견이 엇갈렸다. 5G가 상용화되고, 미국이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는 등 시장 변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국내 망중립성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정책학회는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인터넷망의 최적 이용 모델을 논하다 -망중립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성환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이 최초로 제기된 미국과 국내 인터넷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과 같은 명시적인 망중립성 원칙이 필요치 않다고 설명했다.

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ICT정책-지식 디베이트' 현장의 모습.

구체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경우 인터넷이 정보 서비스로 분류되면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우리나라는 기간통신사업에 포함되면서 규제의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 ▲미국은 지역별로 한정된 인터넷 사업자가 독점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사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는 점 등을 꼽았다.

김성환 교수는 “미국은 독점적 사업자가 등장하고,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등 과정에서 망중립성에 대한 명시적 조치가 필요했지만, 우리나라는 가이드라인 수준을 통해서도 충분히 관리하고 있다”며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서도 규제할 수 있고, 사업자 간 경쟁 정책을 통해서도 (망중립성 원칙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이용자의 자유로운 인터넷 활용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망중립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규범으로서 망중립성을 명시한 것을 얼마 안 됐지만, 인터넷 구동 원리로써 모든 인터넷 접속 주체가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망중립성이 완화되고) 데이터 패킷을 차별하기 시작하면, 규칙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레 규칙을 집행하는 사업자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네트워크 슬라이싱’ 두고도 갑론을박

다양한 5G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인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물리적 네트워크를 논리적으로 구분해 다양한 5G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는 기술이다. 각 서비스 주체나 종류 별도의 가상 망을 제공하는 탓에 망중립성 완화가 전제돼야 한다.

박경신 교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특정 서비스의 접속을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네트워크를 마련해 두는 탓에 보편적인 서비스에 접속하는 이들의 접속 품질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5G가 본격화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대역폭이 늘어나게 되고 혼잡이 사라지게 되는데, 굳이 비행기 일등석에 비유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특정 서비스에만 전용 네트워크를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향후 네트워크 대역폭이 늘어나면 네트워크 슬라이승으로 별도 접속되지 않은 일반 서비스에 혼잡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앱 개발자들이 혁신적인 앱을 만들지 못하는 환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도입하더라도 인터넷 서비스의 최소 품질을 보장하도록 규정한 원칙 탓에 보편적인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크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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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훈 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교수는 “소프트웨어로 물리적 망을 분리해 사용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일정 대역을 할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망을 분리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해당 대역폭이 비면 다른 서비스들이 해당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보편적인 인터넷 서비스의 품질을 저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대근 잉카리서치 대표는 “유럽은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한) 관리형 서비스를 일정 조건 아래 제공하도록 하며, 최소품질 규제를 제시하고 있다”며 “시장경쟁이 활성화될 때 제로레이팅으로 소비자 편익은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