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터 정치까지 ‘개인의 힘’ 세진다...블록체인이 만들 미래

[超시대가 왔다]⑬초개인...P2P 네트워크 블록체인

컴퓨팅입력 :2019/06/03 10:29    수정: 2019/06/03 17:30

임유경, 황정빈 기자

초시대에 블록체인은 개인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기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모든 것이 지능화되고, 모든 것이 융합되는 초시대는 우리 삶에 전에 없던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 혁신의 중심에서 개개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개인 간에 직접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중앙화된 중개자가 해온 '신뢰 담보'의 역할을 네트워크가 기술적으로 대신하면서 가능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블록체인을 '탈중앙화 기술' '신뢰의 네트워크' '중개자를 없애는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런 특성들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지향점을 가리키고 있다. 개인이 더 많은 권한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다. 신뢰의 네트워크 덕분에 중앙화된 중개자가 없어지고, 그들이 쥐고 있던 권력과 권한이 개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최초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비트코인은 개인이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송금하고, 결제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지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온라인상에서 개인이 만든 모든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개인에게 돌려주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 블록체인을 온라인 투표 시스템에 적용해,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어 직접·참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에게 궁극의 '편리함'을 제공해 줄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이 등장한 것과 동시에, 다소 결이 다른 블록체인이 주목 받는 건 단지 우연일까. 세상이 '편리함'을 좇아 첨단으로 치달을 때, 놓치기 쉬운 가치가 역설적으로 더 부각된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이런 이유에서 초시대가 불러올 중요한 변화의 담론으로 '더 많은 권한을 가진 개인' 즉 '초개인'의 탄생을 포함해야 한다. 블록체인으로 인터넷 시대에는 없었던 초개인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디지털 지갑 주소만 있으면 언제 어디로든 송금...금융 혁신이끄는 블록체인

은행 계좌 발급률, 신용카드 보급률이 높은 한국에서는 당장 암호화폐를 이용한 송금·결제가 큰 효용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따져 봐도 여전히 금융은 불편한 점이 많다. 해외로 돈을 보낼 때 특히 제한이 크다. 국제은행간송금협회(SWIFT) 망은 해외 송금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수수료가 비싸서 원성이 높다. 송금에 수일씩 소요되고 수수료도 6%가까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시중 은행들은 해외 송금에 스위프트망을 쓰고 있다.

암호화폐는 초국가적이면서 국경이 없는 화폐 시스템이다. 거래 당사자 간 지갑 주소만 알고 있다면 실시간으로 아주 적은 수수료만 내고도 해외 송금이 가능해진다.

은행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는 더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전 세계 20억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은행 계좌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암호화폐는 이런 사람들이 글로벌 경제에 참여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사진=PIXTA)

블록체인은 중립적인 금융 네트워크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새로운 금융 서비스, 결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혁신적이다.

그동안 은행이라는 소수 권력이 꽉 쥐고 있던 금융 상품을 블록체인 위에선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금융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현 능력만 있으면, 곧바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포함해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일정한 네트워크 수수료만 내면, 누가 얼마를 누구한테 보내는 지 상관 없이 거래를 처리한다. 다시 말해 '중립성'을 가진 금융 네트워크다.

블록체인 분야 유명 강사인 안드레아스 안토노풀로스는 자신이 쓴 <인터넷 오브 머니>에서 이런 '중립성'이 금융혁신을 가져올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 발전 과정을 되돌아 보면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중립성이다. 인터넷은 이집트인 블로거의 의견을 CNN이 가진 목소리의 영향력과 같은 정도로 전 세계에 전파한다. 비트코인은 송신자, 수신자, 거래 가치에 대해 모두 중립적이다. 모든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금융수단, 결제 시스템, 은행업무를 혁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여러분 스스로 시티 은행과 동일한 수준의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혁명적이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에서 올린 글은 내 것일까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올리는 글과 사진은 온전히 나의 것일까? 중앙화된 인터넷 서비스에서 사용자는 클라이언트가 되고, 서비스 운영자는 서버가 된다. 우리가 로그인하고 만드는 데이터는 페이스북에 의해 통제되는 구조다. 실제 데이터는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고 우리는 단지 로그인 세션을 가질 뿐이다.

반면, P2P 분산 시스템인 블록체인에서는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탈중앙화 아이디(DID)가 그 시작이될 전망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DID분야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업이다. 2017년부터 난민 같이 국적이 없는 이들에게 신원을 부여하는 'ID2020'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최근엔 사용자가 인터넷상에서 개인 데이터와 콘텐츠에 대한 권리.권한을 가지도록 돕는 '아이덴티티 오버레이 네트워크(I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ION은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며, 공개키기반구조(PKI)를 통해 데이터를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DID를 이용하면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 및 콘텐츠에 대한 제어 권한을 가지게 된다. 페이스북을 포함해 서버에 사용자 개인 정보 및 콘텐츠를 저장하는 대부분 인터넷 서비스에선 불가능한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ID를 통해 사용자가 ID플랫폼 업체의 제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ID부서 선임 개발자 다니엘 버취너는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디지털 ID는 사용자가 앱이나 서비스, 기관에서 부여받은 이메일 주소와 유저네임이다. ID 제공 업체다 우리 삶 속 모든 디지털 상호작용에 있어 제어권한을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목표는 표준 및 오픈소스 컴포넌트 위에서 구축된 상호운용성을 갖춘 시스템을 통해 수백만 개의 조직, 수십억 명의 사람들, 셀수 없이 많은 기기들이 안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ID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로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한다

기술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을 파고든다. 단순히 어떤 편리함을 주는 것을 넘어, 사회적 구조와 문화까지 변화시킨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우리가 만드는 사회는 결국 기술의 발전과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투표시스템이다.

투표는 개인이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행사하는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투표의 단점은 투표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작은 조직이 아닌 시.도.국가 차원의 선거일 경우에는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투입된다.

따라 큰 규모의 선거인 경우, 한 번 투표를 해 대표자를 뽑고 난 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더 이상 투표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시민의 직접적인 주권 행사는 '가뭄에 콩 나듯'한 투표 때만 가능하게 됨으로써, 실질적인 주권 행사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 투표에 드는 경제적 비용을 줄이고 투표 참여율.횟수를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전자투표는 아직 그 과정에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해 큰 규모의 투표에서는 잘 쓰이지 못했다.

하지만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전자투표 시스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 지자체 단위로 블록체인을 활용해 투표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모스크바 시의회는 최근 전자투표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외에도 정당 차원에서도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스템 도입 논의는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포데모스, 호주의 플럭스 정당 등이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 유타주 공화당에서도 지난 2016년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현재 블록체인 기반 시민참여 투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 '블록체인 도시 서울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기존 모바일 투표 시스템인 '엠보팅'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블록체인을 통한 모바일 투표로 시민 투표의 위변조를 원천 방지하고, 인력과 경비 예산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전자투표를 활성화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사회 구조와 문화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대의민주주의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상에 미치는 결정들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기술이 향하는 지점, 그 끝을 주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혁신을 맞이할 수 있다.

초시대, 블록체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술이 발전하고 그로 인해 우리 삶이 이전보다 편리해졌음을 느낄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세상 좋아졌다."

더 빠르고, 더 편리한 세상. 하지만 우리는 단지 빠르고, 편리한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일부 사람들이 AI, IoT,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의 요소 기술 발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분명 '편리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이 추구하는 '가치'는 중요하다.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해당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사회가 그 기술을 어떤 가치에 맞춰 이용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는 더 편리해지는데, 우리는 정말 살기 더 좋아진걸까.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이고, 더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을까.

관련기사

이제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정 우리가 주인인 사회에 살고 있는지. 기술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블록체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기술로 떠오른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