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패권 마찰…'반도체 코리아' 안전한가

[이슈진단+] 화웨이 촉발 첨단 기술전쟁 그 이후(상)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5/30 08:32    수정: 2019/05/31 11:22

# 2028년.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이 150조원 밑으로 추락했다.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 매출 244조원의 절반 수준이다. 한 때 삼성전자를 지탱하던 반도체 사업은 중국의 공습을 당해내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붕괴는 곧바로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자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했고, 중소·중견 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졌다. 국가 무역수지도 2025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조치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치킨게임에 나서면서 삼성전자는 메모리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온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중국이 대만과 협력해 팹리스부터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시장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통해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는 탓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10여 년 전 우리가 현실적인 위기대응에 나섰어야했다는 후회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9년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로 발발한 중국과의 기술패권 마찰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다. 우리 경제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 시나리오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계속될 경우 펼쳐질 수 있는 미래를 가정해 본 것이다.

현재 다수의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마찰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만큼 이 시나리오는 현실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중국에게 주도권을 내줬던 것처럼 반도체 산업 역시 무조건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이에 따라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맞이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 美·中 무역전쟁,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인가?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부터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첨단기술 국가 도약을 목표로 하는 ‘중국제조 2025’ 정책에 대해 미국이 본격 견제에 나서면서 갈등이 커졌다. 미국 정부가 자칫하면 중국에 기술패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에 나서면서 양국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들에게 반화웨이 전선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면서 공격 강도를 높였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희토류 대미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들면서 양국 마찰은 점차 기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내리자 미중 간 무역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양국 모두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 국가인 탓이다. 4월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은 한국 전체 수출의 38%를 차지했다. 특히, 중국의 비중은 25%를 넘는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거둔 매출만 전체의 17.7%인 43조2천100억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중국제조 2025는 뭘까.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초일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목표로 추진되는 정부 정책이다. 그 중 핵심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다. 첨단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는 자국 기업 기술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 반도체 자급률 75% 확보를 목표로 정부 주도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원유보다 반도체를 더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곧 국가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아직 삼성전자와 격차가 크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제 막 D램 양산에 돌입하는 수준이다. 기술경쟁력 측면에서도 삼성전자가 10nm(나노미터)급 D램을 주력으로 양산하는 반면, 중국의 이노트론과 푸젠진화는 각각 25nm와 32nm 양산을 막 시작하는 등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해외 장비수급이 어려워졌다.

(표=지디넷코리아)

IBK 경제연구소는 ‘반도체 산업 현황 및 우려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추진했으나 미국 정부의 견제와 장비 소재 수출 금지 규제로 기술획득과 생산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올해 모바일용 D램 양산을 준비 중이던 푸젠진화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로 사업 중단위기를, 마찬가지로 올해 D램 양산 예정이었던 이노트론 생산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한국과 (중국의) 메모리 기술격차는 최소 3~5년 이상이다. 미국 견제로 기술추격이 힘들어져 메모리보다 파운드리 육성으로 전략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의) 해외 우수 인재 영입을 통한 기술획득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메모리 반도체이어 ‘파운드리 굴기’ 엿보는 중국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후공정(패키징, 테스트) 등으로 분업화된 형태로 발전해 반도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도 갖추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위협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 SMIC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이미지센서, 전력반도체 등을 위탁생산해 세계 5위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SMIC는 EUV 장비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로부터 EUV 장비를 수주하는 등 기술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SMIC의 이 같은 움직임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노리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격돌을 예고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반도체 비전으로 시스템 반도체(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이미지센서 등)와 파운드리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비전(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다.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상용화가 앞으로 반도체(메모리, 비베모리 포함)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견인하고,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로봇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더욱이 중국은 반도체의 필수재료 중 하나인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중국의 희토류 시장 점유율은 약 80% 이상에 달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선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28일 “미중 무역전쟁에서 희토류를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수출 제한 조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중국이 대만과 적극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더욱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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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와 세계 4위 D램 업체 난야, 세계 4위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 TSMC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에도 파운드리 계약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과 기술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을 충분히 갖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중국이 중국제조2025를 통한 선진 기술국가로 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부분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