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최태원이 필요하다

[이균성의 溫技] 기업인의 시대정신

방송/통신입력 :2019/05/21 15:48    수정: 2019/07/19 09:27

#SK그룹이 매년 계열사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 지표로 측정하고 이를 각사 경영핵심평가지표(KPI)에 50% 반영키로 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최태원 회장이 말하는 ‘더블보텀라인(DBL) 경영’이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새로운 실험의 성패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부디 이 실험이 좋은 결과를 낳기 바란다.

#‘더블보텀라인(DBL)’은 기업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기업'의 사전적 의미는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운용하는 자본의 조직단위’인데, 이는 DBL과 비견돼 ‘싱글보텀라인(Single bottom line)’이라 말할 수 있다. SK그룹의 경우 이제 SBL에서 DBL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최 회장의 경영철학을 몇 가지 점에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죽어라 돈 벌어도 살아남기 힘든 판국에 돈키호테 같은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기업은 다른 생각할 필요 없이 돈 잘 벌고 그래서 일자리 만들면 그 자체로 사회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문재인 정부에 아부하는 쇼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거다.

최태원 SK 회장

#최 회장의 ‘DBL 경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사회’ 두 가지 관점에서 모두 연구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DBL 경영’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손해일 수도 있지만 중장기로 볼 때는 올바른 전략일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결국 소비자의 평판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DBL 경영’은 이점에서 ‘SBL 경영’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

#DBL은 특히 SBL에 비해 경영에 따른 각종 위험요소를 선제적으로 헤징(회피)하는 데 유리한 경영체제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험요소를 회피하는 일이야말로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선결과제다. SK가 이제 막 시도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 행위 자체가 사실은 숨어 있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발견하고 없애는 일과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제도화하고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경영의 위험요소는 경쟁 환경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고 오직 이윤만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나온다. DBL은 전자의 경우 기술혁신 등으로 해결하고 후자는 사회적 가치 측정으로 푸는 것이다. SK가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에 고용, 납세, 환경, 지배구조, 동반성장, 법규 준수 등을 넣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는 당연히 강조되어야 할 내용들인 것이다.

#최 회장의 ‘DBL 경영’은 SK그룹의 지속가능경영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기업인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다. 정치적으로 좌(左)든 우(右)든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미 국가보다 더 직접적으로 국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핵문제를 빼면 우리 사회 문제는 사실 대부분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일자리와 빈부격차가 핵심 문제다. 그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수출형 제조 대기업이 국내에서 더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갈수룩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청년 실업, 결혼 회피, 출생률 저하 등 온갖 문제들은 사실 여기에서 파생된 거다.

#문제는 기업인이 이 문제를 깨닫고 동참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특히 정치인의 해결방식은 좌든 우든 별로 믿음이 안 간다. 우(右)는 SBL만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자리 감소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듯하고, 좌(右)는 사회적 가치만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위한 자유까지 구속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답은 그 중간에 있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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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의 ‘DBL 경영’은 이 점에서 시대정신을 응축한 것이다. 최 회장의 시대정신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그가 말로 다 할 수 있는 정치가나 학자가 아니라 큰 재산을 걸어야 하는 국내 3대그룹의 총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는 따지고 싶지 않다. 왜 감옥에 갔었는지도 알고 싶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우리 사회 문제를 잘 알고 있고 그걸 풀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를 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최태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