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애플 앱스토어'에 던진 송곳 질문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42년 판례 깨고 "누구나 반독점 소송 가능"

데스크 칼럼입력 :2019/05/14 11:21    수정: 2019/05/14 13:5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연방대법원은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매년 신청 건수 중 실제 상고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5%가 채 안 됩니다. 웬만한 소송은 2심에서 마무리됩니다.

대법원은 크게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성립돼야만 상고를 허가해줍니다.

첫째. 하급법원의 법률 적용에 심각한 흠결이 있는 경우.

둘째. 기존 판례를 뒤집을 필요가 있을 경우.

특히 두 번째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1차 특허소송이 대표적입니다. 연방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 하도록 한 그 간의 관행을 문제 삼았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 "앱스토어 모델에선 아이폰 이용자도 최초 구매자"

애플 패소로 끝난 앱스토어 소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아이폰 이용자가 애플을 상대로 앱스토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언뜻 보기엔 단순한 문제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연방대법원이 1977년 ‘일리노이 브릭 대 일리노이 주’ 사건에서 “최초 구매자에 한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결한 적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소송에서 중요한 점은 '앱스토어에서 앱을 구매하는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번 소송을 이해하기 위해선 1977년 연방대법원 판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7년 판례는 벽돌 구매를 둘러싼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였던 일리노이 브릭은 대형 벽돌업체였습니다. 이 업체는 벽돌공사회사에 벽돌을 판매했습니다. 벽돌 공사업체는 다시 건설 수주업체와 계약을 맺고 공사를 했구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건립된 건물을 일리노이주가 구매했습니다. (그림1 참조)

(그림1) '일리노이 브릭 대 일리노이 주' 사건 개념도

그런데 일리노이 주가 일리노이 브릭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벽돌 가격 담합 때문에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는 게 소송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당시 판결에서 “최초 구매자만이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판례가 확립됐습니다. (그림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리노이 주와 일리노이 브릭 사이엔 두 개 업체가 더 개입돼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최초 구매자인 벽돌 계약업체만 일리노이 브릭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은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이 1977년 일리노이 브릭 때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앱 최초 구매자란 겁니다. (그림2 참조)

(그림2) 아이폰 이용자들이 주장한 애플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 개념도

완전 수직계열화돼 있는 일리노이 사건 때와 개념도는 조금 다릅니다. 애플이 중간에서 도매사업자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개발자와 소비자가 수직 연결된 구조는 아니란 겁니다. 이런 유통 구조에선 소비자들이 최초 구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애플은 앱 생태계에서 앱을 구매하거나 재판매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대리인 역할을 할 뿐 직접 판매 행위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가격 책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까지나 가격 책정은 개발자들이 한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책정된 가격에서 30% 수수료를 뗄 뿐이란 겁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앱스토어 생태계에서 최초 구매자는 소비자들이 아니라 앱 개발자들이란 게 애플 주장이었습니다.

(그림3) 애플이 주장한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 개념도

연방대법원은 애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이용자들을 최초 구매자로 봐야 한다고 본 겁니다. 사실상 (그림2)와 같은 구조로 해석한 겁니다.

■ "반독점 행위 피해자는 누구라도 소송 제기할 수 있어야"

그런데 대법원은 이 논리에서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최초 구매자’만 반독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1977년 판례 자체에 대해서도 살짝 손을 봤습니다.

대법원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더 꼽았습니다.

첫째. 반독점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연방 반독점법이 이미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둘째. 반독점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면, 소매업자가 공급자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따라 소송권한을 제한해선 안된다.

셋째. 애플 논리를 받아들일 경우 반독점 소송을 피하기 위해 (고객과의) 관례를 설정하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번 소송으로 애플이 곧바로 반독점 적용을 받는 건 아닙니다. 애플 역시 공식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을 지역법원에서 (반독점)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사진=씨넷)

또 여러 가지 사실들이 제시되면 앱스토어가 독점이 아니란 걸 입증할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애플이 이번 패소로 당장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진 않습니다. 소송까지 수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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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비스 사업의 핵심인 앱스토어 비즈니스 관행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른 건 애플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관행 역시 논란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42년 된 판례를 현실 상황에 맞게 좀 더 탄력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플래폼 사업자의 독주를 견제할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