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장애 코드 오남용 우려 크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 "일부 의료인, 금전적 이득 취할 우려"

디지털경제입력 :2019/04/29 14:12    수정: 2019/04/29 17:10

"수학 문제를 풀다가 골치가 아픈 사람을 두고 바로 다음날 외래 진료를 잡고 두통약을 처방해야 하는가?"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된 '게이밍 디스오더, 원인인과 결과인가' 심포지엄에서 이경민 교수(서울대학교 신경과)는 게임중독에 대한 과잉 의료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이날 '비디오게임에 대한 과잉의료화의 한계와 위험'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게임중독을 두고 과잉 의료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질병 등재 추진에 대한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게임 과몰입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경민 교수 외에도 미국 플로리다주 스탯슨 대학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정지훈 교수 등도 강연자로 참여했다.

이경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장애를 질병코드화 하자는 것은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데 체계적인 분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라며 "하지만 이를 두고 질별코드가 등재됐으니 병이라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을 넘어 음험한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WHO는 오는 5월 총회에선 게임장애 코드가 포함된 ICD-11 통과시킬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경민 교수는 게임장애 코드가 등재되면 과잉 의료화가 일어나 부작용과 의인성 질환이 생겨나고 경제적 낭비와 자원배분의 왜곡이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게임장애 코드가 오용될 우려가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걸렸다고 여기는 것보다 게임장애가 생겼다고 여기는 것이 속 편할 수 있다. 게임장애라고 판단하는 순간 자녀의 문제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게임사 책임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의료인 입장에서도 편리하다. 환자에게 우울증에 걸린 다양한 이유를 설명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보다 게임장애로 판정을 내리면 1시간 할 일을 2분이면 끝낼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이런 행태가 팽만해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장애 코드가 금전적 목적에 연루됐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경민 교수는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추가되면 이에 맞는 새로운 공식 치료법이 지정되기 전까지 모든 치료가 비보험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추가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잘못된 몇몇 의료인에게는 게임장애 코드가 금전적 인센티브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말하고 "질병코드가 부여된 새로운 질병을 연구하는 것처럼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를 새로운 것인양 포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는 "게임장애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며 "질병코드 등재로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을 줄 수는 있지만 오진의 위험이나 게임 이면의 심리적 문제를 간과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더불어 잘못된 비싼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고 게임을 하는 것 자체를 오점으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더 나은 연구, 투명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계획을 미리 공개해서 결과 조작도 방지해야 한다. 또한 게임장애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에 대한 적신호로 여겨야 한다. 게임 자체에 대한 비난은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중독에 관한 학술적 연구의 역사와 문제점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윤태진 교수는 "게임장애와 관련한 국내외 연구 논문 1천459편을 분석하고 그 중 721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했다"며 "게임장애에 대해 한국은 논문 편수와 인구당 논문 편수가 가장 많다. 연구를 진행하기 전 중독 개념에 대한 동의가 이뤄진 상태로 작성된 논문 비중도 91편 중 89%에 달하는 90편이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그는 '현재 게임장애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의료화를 주도하는 측과 대응하는 집단의 경쟁과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며, "게임 연구의 한계는 게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게임 장르와 기술적 환경 변화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연구자가 제한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불완전한 진단 도구로 연구해 그 결과를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훈 교수는 "장르에 따라 게임이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폭력 게임은 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결과가 모두 상이한 상황이다"라며 "게임은 우리 생활 곳곳으로 확대되는 일종의 미디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