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 꼬마 수리공, '아이폰 수리 프랜차이즈' 도약기

김학민 서강잡스 대표 "나를 잡아준 건 책장에 꽂힌 잡스 책"

인터뷰입력 :2019/04/14 10:05    수정: 2019/04/15 14:42

탈북 후 처음 휴대폰을 사던 날, 애플 아이폰에 첫눈에 반해 아이폰 전문 수리점을 차렸고 이제는 프랜차이즈 수리점으로 발돋움 하는 젊은 사업가가 있다.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㉝는 2011년 초 한국으로 온 후 201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 이듬해 자취방에서 개인사업자로 아이폰 수리를 시작했다.

약 3년간 단칸방에서 아이폰 수리를 하며, 서강잡스는 서강대 일대 아이폰 수리 ‘맛집’으로 통했다. 서강잡스에서 수리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일도 다반사였다. 더 큰 도약을 결심한 김 대표는 작년 8월 법인사업자로 전환했고 4월 초 이화여대 근처에 서강잡스 이대점를 열었다. 다음 달 서울 시내에 또 한 곳을 오픈할 예정이다.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

지디넷코리아는 아이폰 수리 프랜차이즈로의 도약을 이제 막 시작한 김학민 대표를 만났다.

■북한 꼬마 수리공, 처음 아이폰 내부 보고 "너무 아름다워"

김학민 대표는 북한에 있을 때 이집 저집을 방문해 가전 기기를 고쳐주는 ‘꼬마 수리공’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자 기기 수리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닌 스스로 터득한 기술이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수리업은 꼬마 김 대표에겐 중요한 벌이었다.

그는 집에서 수리를 하며 접하게 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동경하게 됐다.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감옥에도 수차례 다녀왔다. 결국 탈북을 결심, 2011년 초 두만강을 건넜다. 그해 8월 한국에서 첫 휴대전화를 샀고, 그때 처음 아이폰을 만났다.

김 대표는 “휴대폰 상점에서 쭉 보는데, 당시 스마트폰이라는 걸 처음 만져 보는데도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드나’ 생각이 들고 디자인이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오히려 북한에서 본 모토로라 스틱 휴대폰이나 폴더폰들이 더 멋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다 돌다가 나중에야 아이폰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땐 판매상들이 아이폰보다는 안드로이드 폰을 더 장려하던 시대였고, 또 다른 기종은 배터리도 교환할 수 있으며 DMB도 볼 수 있었지만 아이폰을 골랐다”면서 “디스플레이와 화질이 좋았고 터치감, 인터페이스 모든 것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서강잡스 서강대점 내부 벽면

아이폰 구매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그답게 아이폰 해부였다. 6각 별나사에 맞는 드라이버가 없어 혼자 뾰족한 쇠를 갈아 드라이버를 만들었다. 뚜껑을 열어 안 회로를 들여다보곤, 마치 예술 장인이 한 거처럼 불필요한 배선이 지나가지 않고 밀집된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했다고. 내부를 보면 기술력을 알 수 있는데, 애플의 기술력은 물론 철학까지 체감한 순간이었다.

마치 필연인 듯 그즈음 탈북 한 친한 동생으로부터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선물 받으면서 김 대표의 아이폰 인생은 본격 시작됐다. 자신이 첫눈에 반한 아이폰을 만든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는 “고향에서 한 동네에 살던 친한 동생이 탈북해 만났는데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가 적힌 책을 줬다”며 “그 친구가 오빠가 좋아하는 IT의 황제 같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세상에 넘버원 IT 기술자인데 오빠가 그 사람을 알면 좋을 것 같다. 스티브 잡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탈북민 한계 짓는 시선에도 말릴 수 없던 '창업 정신'

하지만 탈북민에게 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다. 탈북 후 약 2년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그러던 중 책장에 꽂힌 스티브 잡스 책이 김 대표를 잡아줬고, 서강대에 입학하고 수리점을 차리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 대표는 14학번으로 입학한 후 2015년부터 학교 바로 앞 자취방에서 아이폰 수리를 시작했다. 꼬마 수리공 시절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고도 혼자 배워 스스로 기술을 깨우쳤다.

2년 넘게 작은 단칸방에서 아이폰 수리를 해오며 유명 인사가 돼 TV 출연도 했다. 그의 수리점은 날로 잘 돼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아침에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아이폰만 수리했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통장에 늘어나는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열심히 일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돌아오면 허전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는 이제 기업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서강잡스 서강대점에서 아이폰을 수리하는 김학민 대표.

김 대표는 “탈북하고 1, 2년은 너무 없이 살았다. 그래서 더 돈을 열심히 벌었던 거 같다”면서 “하지만 이제 나 혼자 먹고 사는 기반은 만들었으니 기업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의 서비스나 사업체 때문이 여러 많은 사람들이 같이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게 자부심 아닌가 생각했다”며 “주변인들이 법인 설립에 반대하고, 탈북민의 한계에 대해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가마다 서강잡스 지점 내는 게 소원

김 대표는 자취방을 떠나 작년 드디어 아이폰처럼 깔끔한 수리점 서강잡스 간판을 달았다.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디자인했고, 접수 데스크 뒤로는 ‘아이폰 수리로 사람의 마음까지 살린다’는 철학의 로고도 커다랗게 붙였다. 서강대 선배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법인을 등록했다.

아이폰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90%를 해결하는 수준까지 기술력도 끌어올렸다. 몇 년간의 수리 노하우로 이제는 현미경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고난이도 회로 결점도 수리해낼 수 있게 됐다. 보드에 붙은 수백 가지 칩 중 고장 난 부분만 잡아내 수리할 수 있어 불필요한 부품 비용을 줄일 수 있게 했다. 작은 액세서리 외에 맥북, 아이패드 등도 수리한다.

관련기사

최근엔 이화여대 앞에 서강잡스 이대점도 문을 열었다. 서강점, 이대점 모두 자신이 가르친 직원들이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5월엔 앞서 두 지점보다 큰 규모의 서강잡스 지점을 또 하나 낼 예정이다. 대학가에 하나씩 지점을 내는 게 그의 목표다.

김 대표는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를 처음 알게 됐고, 방황할 때 나를 잡아준 것은 책장에 꽂힌 스티브 잡스 책이었다”며 “그의 명언 중 ‘타인의 인생에 빠져 헛된 삶을 살지 말라’는 말과 ‘좋아하는 것을 계속 쫓고 그걸 계속 하라’는 말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