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이균성의 溫技] 청와대 인사 구멍

데스크 칼럼입력 :2019/04/01 14:44    수정: 2019/04/01 16:29

#문재인 정부 앞날이 순탄하리라 예상치 않았다. 적폐청산, 사회통합, 남북문제, 경제혁신. 네 가지 과제 모두 다 쉽게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보다 그 방향성에 대해 합의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끝없이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현재보다 머지않을 미래를 위해 모두가 투자한다는 심정이 되어야만 조금씩 나아지는 문제다.

#문제는 그게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국민의 눈에 공허해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의 결과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촛불혁명처럼 어떤 계기로 잠깐 설득한 것처럼 보여도 금세 질리게 마련이다.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땅저땅 다 뒤집고 내일은 어찌되든 아파트 막 지어 분양하는 게 더 눈에 띌 수 있다.

한-말레이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상의)

#문재인 정부가 지금 그런 유혹을 받고 있는 듯하다. 확대되는 경제위기론 탓에 애초에 무슨 고민을 했는지, 즉 이 나라를 어디로 끌어가고자 했는지, 방향성마저 잃고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다. 이곳저곳에서 거드는 사공은 많아지고 배는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야당으로선 좋아할 일이지만 국민을 생각하면 큰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 위기로 ‘선한 미래 가치’까지 조롱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부족하다 해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인내를 설득해낼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정치는 이 일을 성공시켜낸 사례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많은 것들이 잘 들어맞아야 가능하겠지만 그중 맨 윗자리를 차지해야 할 전제조건은 ‘헌신적이면서도 도덕적인 리더십’을 구축하는 일이다. 최근 청와대 인사가 걱정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촛불혁명의 분위기가 이어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신선한 인사와 감동적인 퍼포먼스였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정부 요직이 저 정도의 인물들로 구성된다면 믿고 맡길만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이 바뀐 사람이 많다. 능력은 둘째 치고 도덕성과 헌신성으로만 봤을 때에도 형편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대통령은 그 원인을 신속히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중요해 보인다. 인사가 만사다. 그건 단지 금언이 아니다. 빠져죽는 승객은 나 몰라라 하고 팬티 차림으로 내빼는 건 세월호 선장뿐이 아닐 것이다. 각 부처의 수장 자리는 세월호 선장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부동산 문제로 논란이 되는 수장이 어떻게 국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펴나가리라고 믿을 수 있겠나.

#조국 민정수석은 하소연할 때가 아니다. 과거와 달리 국정원이나 검찰의 정보를 인사 검증에 활용하지 않는 건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구멍 난 인사 검증의 면피수단이 될 수는 없다. 다른 방법을 더 연구했어야 했다. 지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어서도 안 된다. 먼저 국민 앞에 잘못을 인정하고, 어려움을 고백한 뒤,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솔직해지는 것이 헌신적인 거다.

#여당은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적극적인 소방수가 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도덕적이고 헌신적인 일꾼’을 발굴해 인력풀을 넓히는데 애쓰고 단기적으로는 국민 정서에 부합하게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도 잘 해야 한다. 야당 같은 무책임한 비판에 앞서 국민의 마음을 미리미리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불씨를 골라내는 데 고도의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는 게 진짜 헌신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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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후보자들은 부디 국민의 눈높이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권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성공방정식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를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모두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보통의 국민이 받아들일만한 것인지 묻고 또 묻기 바란다. 인사청문회는 이제 요식행위가 아니다. 과거를 모두 까야 하는 힘든 자리가 청문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 ‘우리가 남이가’라는 ‘네트워크 지상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인사 실패와 부정부패의 90%는 여기서 비롯된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네트워크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주체(主體)의 주장이 지닌 가치(價値)와 그 도덕성을 우리 모두가 꿰뚫어보려고 노력할 때 사회는 조금씩 발전한다. 여당 지지지나 야당 지지자나 마찬가지다. 여든 야든 그래야 더 도덕적이고 헌신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