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주주들의 반란 혹은 혁명

[이균성의 溫技] '제왕적 오너'에 대한 경고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27 13:35    수정: 2019/03/28 08:22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된 사례는 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국내 대기업의 모든 ‘오너’들이 타산지석의 거울로 삼을 만 하다. ‘오너 리스크’는 그저 이름뿐인 경영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소비자 즉 국민을 분노케 한 ‘오너’에 대한 사회적 응징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치인은 배에, 국민은 바다에 비유되곤 한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국민 무서운 줄 알라는 대표적 정치 경구다. 이 말은 원래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중국 전국시대 철학자 순자(荀子)의 이야기를 모은 책 ‘순자’의 왕제편(王制篇)에 나온다. 군주민수(君舟民水)가 그것이다. 교수신문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 이 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군주민수는 시장(市場)에 대한 경구로 변주될 수도 있다. 기주소수(企舟消水) 정도가 어떨까. 기업이 배라면 소비자는 바다라는 의미에서. 기업을 띄우는 것도 외면함으로써 몰락시켜버리는 것도 결국은 소비자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조양호 회장은 훗날 기주소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할 만 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경영 이슈’가 아니라 ‘사회 이슈’로 침몰당했다는 사실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뉴스1)

#형식은 물론 주주총회를 통한 주주들의 표 대결이었다. ‘사회적 응징 사례’라 표현했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주주 자본주의에 입각해 처리됐다. 소비자나 시민사회가 결정한 게 아니라 주주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국민연금은 그 이유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주주권 침해가 반대의 핵심 이유인 것.

#국내 대기업에는 매우 드물지만 경영권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이는 경우는 사실 왕왕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시도될 때 그런 사례가 많다. 그 때 주요 이슈는 당연히 ‘경영’과 ‘소유’의 문제다. 이해관계가 얽힌 주주 사이의 ‘끼리끼리 문제’다. 조 회장 사례가 주목받는 것은 이와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형식은 주주 자본주의였지만 내용은 ‘사회적 응징’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33.35% 외에 24.34%의 주주가 국민연금(11.56%) 견해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엔 시민단체의 독려를 받은 소액주주도 일부 포함됐겠지만,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등으로부터 반대 투표 권고를 받은 캐나다연금 등 다수의 외국 자금도 포함됐다. 순전히 자본이득만 생각하는 기관들도 반대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강조돼야 한다.

#돈만 보고 사는 이들이 왜 "항공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한항공 측의 설득보다는 ‘주주권 침해’를 내세운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줬을까. 기주소수의 이치가 너무 명약관화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선장을 갈아치우는 것 외에 소비자일 수밖에 없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고 이를 거스르면 대한항공이란 배가 침몰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따른 게 아니겠는가.

#조 회장과 그 일가의 패악은 새삼 논할 것도 없다. 누구나 다 소비자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꼭 조 회장 일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국민연금은 당장 최태원 SK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도 반대했다. 국민들은 조 회장 일가가 특별히 심하긴했지만 대기업 오너들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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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는 이야기다. 이제 주식회사 모든 오너들에게 ‘오너’라는 이상한 이름의 사회적 지위를 조금 더 객관화해서 바라 볼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 오너는 사실상의 ‘제왕적 오너’였다. 누가 무엇이 그런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왕적 오너’는 객관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들은 다만 ‘절대 100%일 수 없는 대주주’일 뿐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가 몇 %의 지분의 갖고 있든 그는 결국 회사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그 외에도 지분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마저 빚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고를 다하는 임직원들이 그렇고 주머니 털어 상품을 구매해주는 소비자들이 그렇다. 그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 회장의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KAL 주주들의 반란 혹은 혁명은 그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