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니 vs 부테린 '암호화폐 토론'이 기대되는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현재가치 vs 미래 가능성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22 08:13    수정: 2019/03/22 10:2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닷컴 열풍은 얼마 지나지 않아 투기거품으로 변질됐다. 하지만 남겨진 것도 있다. 인터넷이란 신기술과 그것의 새로운 용도에 대한 가능성이다.”

누리엘 루비니는 2010년에 쓴 ‘위기경제학’에서 닷컴 거품이 남긴 유산을 이렇게 평가했다. 수많은 기업이 망한 뒤 남겨진 통신 인프라가 새로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단 얘기다.

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호되게 비판한다. 그 땐 남겨진 실제 자산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루비니가 '위기경제학'에서 “투자에 관한 새로운 기술은 뭐라 부르든 결국 투기열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하는 건 이런 차이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루비니가 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강하게 비판하는 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 작년 10월 설전 이후 6개월만의 만남…이번엔 어떤 결과?

'블록체인 저격수' 누리엘 루비니가 한국에 온다. 오는 4월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는 ‘분산경제포럼’에서 암호화폐 대표주자 비탈릭 부테린과 맞장 토론을 한다.

둘은 ‘암호화폐 본질적 가치의 지속가능성’이란 주제로 열띤 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분산경제포럼 등록 바로가기)

부테린은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이더리움 창시자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루비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 때 이후 '닥터둠'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가 금융위기 2년 뒤에 쓴 '위기경제학'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둘의 토론은 이번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10월 이미 한 차례 공방을 벌였다.

싸움을 먼저 건 건 루비니였다. 루비니는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호되게 비판했다. 한 발 더 나가 암호화폐 대표주자인 부테린까지 강하게 공박했다.

지난해 10월 부테린과 루비니는 트위터에서 설전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그 땐 ‘트위터 설전’이었다. 할 말 한 뒤 빠져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서로 얼굴 맞대고 공방을 벌인다. 4월4일 토론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일부에선 둘이 서로 헛바퀴 돌다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한쪽은 경제원론을, 또 다른 쪽은 기술 얘기를 잔뜩 늘어놓다가 끝날 수도 있단 게 그 이유다.

(1970년대 권투와 레슬링 최고 선수 대결로 유명했던 알리와 이노키의 한 판 승부처럼. 당시 이노키는 경기 내내 드러 누워있었다. 반면 알리는 경기 내내 이노키 주위만 맴돌다가 끝났다.)

하지만 난 이번 토론이 굉장히 기대된다. 현실과 미래란 두 바퀴가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확장성 없고 보안도 불안" vs "기술적 가능성 외면"

루비니가 블록체인을 비판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확장성도 없을 뿐더러, 제대로 된 분산기술도 아니란 것이다. 게다가 안전하지도 않다. ‘제2의 인터넷’ 운운하는 건 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부테린은 당연히 이런 주장에 반발한다. 루비니의 비판이 ‘경제학자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술적인 가능성은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것만 물고 늘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단 얘기다.

부테린은 지난 해 공방을 벌일 당시 “루비니가 대단한 통찰력이 있어서 금융위기를 예견한 게 아니”라고 꼬집기도 했다.

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잘 아는대로 경제학자는 현 상태를 분석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불완전한 기술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루비니는 ‘투자에 관한 새로운 기술’에 대해선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경제학 역사에서 흔하게 봐 왔던 투기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부테린은 다르다. 물론 블록체인은 아직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한계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기술 전문가에게 주어진 과제다.

중앙은행이 배제된 분산 거래란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만 해도 그렇다.

경제학자인 루비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달아오른 시장이 늘 그렇듯, 온갖 투기꾼이 난무하는 상황 역시 불길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엔지니어인 부테린에겐 지금의 혼란은 ‘완전한 분산 시스템’이란 거대한 목표를 향해 가는 한 과정일 따름이다. 그에겐 실패조차 ‘투자’다.

애초부터 팽팽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널리즘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것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난 이번 토론이 갖는 의미는 좀 더 크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둘의 토론이 법정 화폐와 암호화폐를 둘러싼 생산적인 토론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기술 지배 시대의 철학 공방…한단계 진전된 토론 기대

우리는 주변 세계를 운영하는 기술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거래의 기본 성격을 바꾸는 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

기술지배 사회의 철학적 토대를 건드리는 질문이다. 루비니와 부테린의 토론은 이런 철학적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파고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지난 해 10월 이런 기대감을 나타낸 적 있다.

루비니는 ‘실체 없는 기술 혁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그가 ‘닷컴 거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건 통신시스템이란 실물 자산을 남긴 때문이다. 그 자산들이 새로운 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난 이 대목이 이번 토론에서 중요한 논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거품(혹은 열풍)’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문은 또 어떨까? 만약 루비니가 1999년말과 2000년 초반 닷컴 붐 때 미래 전망을 했다면 어떤 진단을 내놨을까? 그 때도 여전히 ‘위기경제학’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입장이었을까?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 다른 경고를 내놨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는 ‘이뤄지지 않은 가능성’보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떤 존재일까?

‘암호화폐 투기’가 한 바탕 지나간 이후에 남겨진 소중한 자산일까? 아니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투자 기술, 혹은 투기 수단에 불과할까?

부테린은 당연히 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에 버금가는 소중한 인프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 주장을 할 루비니는 어떤 근거를 제시할까?

세기의 대결이 될 이번 토론에서 꼭 듣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번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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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알리와 이노키의 세기의 대결은 ‘소문만 잔치엔 역시 먹을 것이 없다’ 는 평가를 남기고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다른 격투 종목 선수 둘이 맞붙었던 그 때의 이벤트는, 수 십년이 지난 뒤 ‘종합격투기’란 새로운 스포츠로 결실을 맺었다. 일단 맞붙어서 나쁠 건 없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