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열풍이 전통산업을 '증발'시킨다

[신간소개] 로버트 터섹의 '증발'

인터넷입력 :2019/03/19 14:23    수정: 2019/03/19 16:27

에어비앤비가 나오면서 호텔 체인이 위협받고 있다. 우버는 전세계 운송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넷플릭스가 선보인 ‘빈지뷰잉’은 그 동안 상식으로 통했던 텔레비전의 선형적 편성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뿐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심장으로 통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해 “중앙은행은 암호화폐에 밀리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근의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로버트 터섹의 ‘증발’은 이런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블록체인에 이르는 첨단 기술들이 전통 산업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지 찬찬히 짚어준다.

저자는 변화된 새로운 현상을 ‘증발’이란 단어로 요약한다. 증발은 액체가 수증기로 바뀌면서 허공으로 날아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버가 선보인 '우버 프레이트' 서비스.(사진=Otto)

책을 토대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우리가 익숙한 종이책은 고체 상태다. 탄탄한 반면, 한번 담긴 내용은 업데이트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큰 변화가 없다.

웹이 등장하면서 이런 상황이 달라졌다. 정보가 컴퓨터 화면 속 소프트웨어로 바뀌었다. 고체 상태로 비유할 수 있는 종이책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 하지만 여기도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야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이런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준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다.

터섹은 이런 상태를 “정보를 증발시켰다”고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보기에 우버는 단순한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아니다. 우버는 “자동차 소유 개념을 증발시켰다.”

■ "정보로 전환될 수 있는 고체는 기필코 정보가 된다"

저자는 증발을 두 가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보가 증발하는 상태. 그리고 그 결과로 전통 산업이 사라지는 현상.

증발 경제는 모바일 혁명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모바일 혁명 덕분에 가능해진 규모의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들이 증발 경제 시대를 주도할까? 저자는 크게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교환대와 시장, 플랫폼, 그리고 생태계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전부 이 네 가지 요소들을 잘 결합했다.

물론 이런 현상엔 또 다른 토대가 됐다. 21세기를 지배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사회’란 개념이다. 소프트웨어 정의 사회에선 모든 고체는 서비스로 전환된다.

터섹은 아예 “정보로 전환될 수 있는 고체는 어떤 것이든, 기필코 정보가 된다”고 단언한다. 정보로 전환된 전통 비즈니스는 교환대와 시장, 플랫폼, 그리고 생태계를 통해 빠른 속도로 증발된다.

저자는 “증발 경제에서 사업을 하려면 구글, 애플, 아마존 외 인터넷 거인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한다.

“증발이 좋든 싫든 상관없다. 사회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든 저항하든 크게 신경쓰지 마라.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이라. 이런 흐름을 무시하지 마라.” (331쪽)

이 책은 증발이란 개념을 토대로 모바일 경제의 핵심일 잘 집어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의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는 책이다.

모바일 경제의 핵심 원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잘 아는대로 네그로폰테는 35년 전 ‘디지털이다’란 책으로 디지털 경제의 핵심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줬던 인물이다.

한국어 번역서의 구성도 독특하다. 역자와 출판사는 원서 중 25% 가량을 각주처럼 책 뒤편에 배치했다. 한 단계 더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본문에 있는 숫자를 찾아 책 맨 뒤에서 각주처럼 추가로 읽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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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성 덕분에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이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출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이런 편집 방식 역시 전통적인 번역서를 증발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로버트 터섹 지음/ 김익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