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격차 출발점…차세대 생산거점 키워야

[이슈진단+]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상)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2/22 12:42    수정: 2019/02/22 12:43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조성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인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지난 20일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정치권의 여론전으로 확산됐던 특화 클러스터 조성이 어렵사리 첫 발을 뗀 것이다. 아직 부지가 용인시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안건을 제출해 조속한 클러스터 조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일부 지자체들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를 조성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대외적인 환경은 이를 고려할 만큼 녹록치 않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의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해봤다. [편집자주]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는 공식적으로 지난해 산업부가 발표한 ‘제조업 활력 및 혁신 전략’의 일환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SK하이닉스와 50여 개의 관계 기업들이 참여해 2028년까지 120조원(장비구매 등 포함)을 투자해 대규모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여파로 인한 중국산(産) 반도체에 대한 고관세(25%) 부과 ▲중국 정부의 ‘제조2025’ 정책에 따른 반도체 굴기(2025년 반도체 자급률 75% 달성) 등의 대외적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이 시급한 이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의 가격둔화 영향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이 담긴 산업부 '2019 업무보고' 중.

실제로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월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23.4% 감소한 75억4천만달러로 핵심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30.5% 줄어든 47억6천만달러에 그쳤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5.8% 감소한 463억5천만달러를 기록했고, 1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도 전년동기 대비 18.2% 감소한 144억7천만달러에 머물렀다.

세계 1·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하반기(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3분기) 대비 각각 43.08%, 32% 감소하는 부진을 기록할 정도로 위기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4Gb 기준) 현물가격은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 지난해 9월 3.67달러(약 4천132원)였던 D램 현물가격은 올해 1월 17.71% 감소한 3.02달러(약 3천400원)를 기록하고 있다.

■ ‘초격차’ 위한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최적지는 ‘용인’

SK하이닉스가 사실상 클러스터 조성 부지로 확정한 경기 용인 원삼면 일대(약 448만 제곱미터 규모)는 다수의 반도체 장비부품소재 기업들이 인접한 장소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24개사(반도체 장비부품소재 업체) 중 약 85%가 서울 및 경기권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용인은 이들 기업들이 실시간 유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최적지로 꼽힌다. 이는 반도체 산업은 기술개발 및 생산 전 과정에서 제조사와 장비·부품·소재 업체 간의 공동 연구개발, 성능분석, 장비 셋업유지보수가 필수적인 것에 기인한다.

앞서 경기 이천, 충북 청주, 충남 천안, 경북 구미 등이 클러스터 조성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정부가 용인을 유력지로 적극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용인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안기현 반도체 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 논의가 반도체 산업의 초격차를 실현하고, 반도체 부품장비소재 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며 “용인은 기업들의 설비이전, 인접 기업과의 상생협력, 핵심인재 육성을 위한 최적지로 예전부터 평가받아왔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공장 모습. (사진=SK하이닉스)

또 “현재의 대외적인 상황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용인 클러스터는 대기업이 직접 참여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제조단지 클러스터로 협력 업체들이 함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덧붙였다.용인은 SK하이닉스의 협력기업 외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는 다수의 반도체 부품소재장비 기업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연구개발 등 다양한 협력에 나설 경우, 제조경쟁력 향상은 물론 국내 반도체 장비·부품·소재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는 성공사례를 만들 수도 있다.

예컨대 혁신성장의 대표 모델로 꼽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용인은 다수 기업들이 함께 협력해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상생협력 단지로 만들어 대중소 기업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전략기지로 도약시킬 수 있다.

반도체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장비·부품·소재 기업들은 그간 해외 기업들의 특허 장벽에 막혀 시장 진출에 한계를 겪어왔다”며 “대중소 기업이 상생하는 용인 클러스터를 통해 기술경쟁력 측면에서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용인에는 다른 지역보다 많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위치하고 있고, 이들 기업들은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과 협력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 주목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용인은 시장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고 완전무결한 제품을 생산해야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최적지로도 꼽힌다. 수도권에 위치한 용인은 근로 및 거주 여건을 고려할 때 이천, 청주, 천안, 구미보다 고급 인력들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투자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 3위의 D램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은 미국 수도 워싱턴DC와 거리가 불과 40킬로미터 떨어진 버지니아주 매너서스에 생산시설을 마련한 바 있다. 세계 최고의 종합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인텔 역시 미국의 대도시인 피닉스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바 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용인 인접 기업들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핵심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10년간 총 1조2천2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상생펀드 조성에 3천억원,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상생협력센터 설립 및 상생프로그램 추진에 6천380억원, 공동 연구개발에 2천800억원을 순차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초격차 위한 '차세대 생산거점'으로

SK하이닉스는 사실상 용인을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 부지로 확정하고, 2022년 이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또 용인 클러스터 부지에 50개 이상의 반도체 장비부품소재 기업들을 입주시켜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한 다각적인 협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를 SK하이닉스의 D램 및 차세대 메모리 생산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나아가 이천은 연구개발, 마더팹 및 D램 생산기지로 육성하고, 청주는 낸드플래시 중심의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3각(용인이천청주) 축을 구성해 메모리 사업에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게 SK하이닉스의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용인 클러스터에 10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이하의 미세공정 기술에 기반한 차세대 D램 제조단지를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적극 도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초격차 전략과 관련해 청주에 신규 공장으로 M16을 구축하고, 이곳에 EUV 장비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장비 업체 한 관계자는 “과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10nm 이하 공정기반의 반도체가 올해 EUV를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초격차 기술은 수nm 이하 공정까지 지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판단”이라며 “SK하이닉스도 세계 2위 메모리 기업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EUV를 적극 도입해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하이닉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가 국내에 차세대 공정기술에 기반한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대외적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해도 공급물량 및 기술경쟁력 측면에서 계속해서 격차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용인 클러스터는 시장상황을 고려해 차세대 메모리 생산거점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으로 대외적인 위기에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위치로 고려된다”며 “앞으로 용인 클러스터에 혁신 기술에 기반한 생산시설을 조성해 초격차 전략을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기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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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산업부는 용인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른 국가적 필요성 검토를 거쳐 22일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 공급(특별물량)을 요청하기로 했다. 수도권정비위원회가 내달 중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심의에 돌입하고, 산업부가 연내 산업단지 지정계획을 고시(산업부)하면 용인 클러스터는 2020년 중 승인신청이 이뤄질 예정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1기 공장 착공시기는 2022년 중으로 본격적인 가동시점은 2024년부터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기업들과의 협업, 우수 전문인력 확보, 기존 SK하이닉스 공장과의 연계성(생산, 연구개발 등) 등을 감안했을 때 수도권 남부 용인지역의 입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는 소재장비분야 국내외 협력업체 50개 이상이 입주해 명실상부한 대중소 상생형 클러스터 조성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