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폐 발행 유인·근거없다"...한국銀 도돌이표 보고서

"결론에 대한 뚜렷한 근거 부족" 지적 나와

금융입력 :2019/01/29 18:17

한국은행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가까운 장래에도 발행할 만한 유인과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되풀이했다.

결론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내용도 비슷해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부실하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족한 가상통화연구도 해체돼 국내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분석 및 연구 기능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29일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디지털 화폐의 정의 ▲기술 구현·운영 방식 ▲디지털 화폐 발행 시 고려해야 할 법적 사안▲발행 시 중앙은행 책무와의 연관성 등이 담겼다. 작년에 낸 두 건의 보고서와 구성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에도 한국은행은 디지털 화폐의 정의, 주요국 동향과 법적 쟁점사항, 통화정책 시 얻을 수 있는 장단점을 분석해 내놨다. 한국은행은 2018년 4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6월에는 '암호자산과 중앙은행'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보고서 콘텐츠와 결론도 한국은행은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는 중이다. 한국은행 이상엽 금융결제국 부장은 "검토를 해본 결과 주요국도 한국은행도 가까운 장래에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만한 여건도 아니고 동기도 없다"고 매듭지었다.

하지만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봤을 때 결론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부족한 실정이다. 일단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적 편익-비용 분석 모델이 빠져 있다. 이상엽 부장과 한국은행 윤성관 금융결제국 전자금융조사팀장은 "편익 분석에 대해서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고 계량화하는 작업들을 해야 하는데 모델 세팅이 되지 않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중앙은행도 마찬가지며 학자들 사이에서 충분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여기에 지난해와 동일하게 소액결제 환경에서의 디지털 화폐 발행에 관해서만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추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거액결제 상에서 디지털 화폐 발행이 갖고 있는 함의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상태다. 분산 원장 기술인 블록체인이 실제 금융사에서 무역금융 등 거액결제단에서 적용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액결제보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연구 보고서가 아쉽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기본적인 개념 풀이와 연구에만 충실하다 보니 현실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점도 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법정 통화와 발행 코인(토큰)을 1대 1로 매칭해주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 등을 연구 중이다. 중앙은행이 법정 통화와 디지털 화폐의 태환성을 보장해준다고 정의한 디지털 화폐와 일견 비슷한 구조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윤성관 팀장은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업체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살펴봐야 가치 변동성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며 "사업 구조를 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1년 여 운영됐던 가상통화연구반을 이날로 해체한다. 영국과 일본, 중국 중앙은행은 물론이고 국제결제은행(BIS)·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발행 문제를 주목하고 있어, 한국은행도 연구의 맥을 놓쳐서 안 되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은행은 연구반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디지털 화폐 등에 대한 연구는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상엽 부장은 "연구반이 해체하더라도 국제국·금융안정국·금융결제국 등에서 각 국별로 개별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라며 "연구반은 각 국 별로 연구수준과 관심사항이 달라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현금을 발행하고 유동성 수준을 결정하는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와 금융안정을 꾀하는 중앙은행으로서 새로운 기술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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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디지털 화폐는 외환 부문에서 국내 시장의 불안정성을 부추길 수 있어 소규모 개방 경제인 대한민국이 선도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디지털 화폐를 거주자와 비거주자(외국인)에게까지 발행할 경우 달러나 엔 등과 교환할 때 비용적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화를 달러로 바꿀 때 디지털 화폐는 가치가 고정돼 있고 교환비용도 수반되지 않지만, 현금은 이런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 사실상 손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이상엽 부장은 "디지털 화폐에는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다. 신용리스크를 줄인다는 장점때문에 곧 실시해도 문제가 없지 않냐고 말하지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안정성, 발권 등을 아울러봤을 때 한 쪽만 보고 발행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