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 개편과 규제개혁의 당위성

[박승정 칼럼] 4차 산업혁명시대의 관점에서 본 앙시앙레짐

데스크 칼럼입력 :2019/01/29 08:35    수정: 2019/01/29 23:32

잠시 옛날 얘기로 돌아가 보자. 중국 춘추시대 중엽, 당대의 명의인 편작(扁鵲, BC401~BC310)은 채환공(蔡桓公)의 병세를 살피고 말했다.

“군주는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채환공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의사란 병이 없는 사람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고 자신의 공으로 삼기를 좋아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 뒤, 편작이 다시 채환공의 병증을 살폈다. “군주의 병은 살 속까지 퍼졌으니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채환공은 여전히 무시했다. 생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얼마 뒤, 채환공의 병증을 살핀 편작이 말했다. “군주의 병이 위(胃)와 장(腸)까지 다다랐으니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이번에도 채환공은 응하지 않고 오히려 불쾌해 했다.

또 다시 얼마 뒤, 편작은 채환공을 멀리서 바라보다 이웃나라로 달아났다. 채환공이 사람을 시켜 까닭을 묻자 편작은 말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찜질로 치료하면 됩니다. 또 살 속에 있으면 침으로, 위와 장에 있으면 약을 달여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골수까지 파고들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환공은 결국 죽고 말았다.

한비자의 ‘유로편(喩老篇)’에 나오는 일화다. 한가롭게 한비자의 처세술이나 왕도를 논할 생각은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모습. (사진=뉴스1)

■ 산업경제 내우외환 이중고.... 내수 부진 속 수출 하강 ‘경고등’

경제 얘기다. 새해 들어 남북문제를 제외한 경제와 산업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내우외환이다. 내수 부진뿐만 아니라 수출마저 경고등이 울렸다. 자칫 경제가 회복불능의 장기 침체기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산업 전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선, 내수 문제를 보자. 소매판매액과 서비스업 생산의 증가폭이 모두 축소되고 있다. 소비선행지표는 지난해 이어 기준치를 밑돈다. 설비투자 역시 지속적인 감소세다. 신산업 분야의 창업도 신통치 않다.

수출은 특히 우려스럽다. 미·중 무역전쟁의 곤혹스런 처지에서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충격의 여파가 예상 외로 크다. 석유화학·자동차·철강·금속·가전도 예사롭지 않다. 제조업 체감경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외쳤지만 정파 간 이념 논쟁으로 시간만 허비했다. 대선 때 주창했던 4차 산업혁명시대의 비전은 간 데 없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데 최저임금과 같은 분배 문제로만 해결하려는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내놓은 정책마다 역효과만 냈다.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으나 부동산은 사상 최고로 폭등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외쳤으나 내수는 오히려 뒷걸음쳤다. 일자리를 장담했으나 고용 성적표는 9년 만에 최저치다.

경제 활성화도 요원하다. 반도체에 기댄 ‘착시현상’이 걷혀지는 모양새다. 온갖 통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국면전환은 어렵다. 도심의 사무실은 비어가고 상가 매물은 쌓이고 있다. 지역 산업단지의 가동률은 말이 무색할 정도다.

혁신성장도 제자리다. 말뿐인 규제개혁이 그 방증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블록체인·빅데이터·사물인터넷·로봇(드론) 등 딥(Deep) 테크는 규제 장벽에 막혀 있다. 공유경제·핀테크 역시 기득권에 눌렸다. 중국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그런데도 반성은 없다. 5월이면 문재인정부 출범 3주년이다. 이전 정부 탓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구시대적 단기정책에 따른 소득양극화와 가계부채, 국정농단이란 옛 노래만 읊조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엔 현실 경제의 어려움이 너무도 엄중하다.

정치과잉이 원죄다. 표만 의식하다보니 산업구조 개편과 규제개혁은 후순위로 밀렸다.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사회적 갈등과 진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은 아예 입에 담기도 어렵다. 1차 병증은 무시했고, 2차 병증은 회피했으며 3차 병증은 아예 외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기업인들에게 인사말 하는 모습. (사진=뉴스1)

■ 위기의 근원은 산업화시대의 앙시앙레짐.... 4차 산업혁명시대 맞는 산업구조 개편 나서야

모두 앙시앙레짐(ancien regime)의 산물이다. 문제의 본질 얘기다. 산업화시대의 정부구조와 산업구조를 그대로 둔 채 4차 산업혁명시대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법과 제도, 철학과 사상, 인재도 과거의 낡은 유물 수준이다.

자칫 우리 경제와 산업은 편작이 와도 고치기 힘든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존재감이 없고 공무원은 무사안일을 업무지침처럼 신봉한다. 블록체인과 같은 신경제의 패러다임은 먼 나라 얘기다.

정부의 역할이 기업인들 불러놓고 박수치며 악수하고 투자 요청하는 게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냄비 안 개구리 신세라는 점이다. 병증으로 치면 우리 경제와 산업은 중증(重症)이다. 편작이 진단한 마지막 기회까지 놓친다면 희망은 없다. 국가 개조 수준의 경제와 사회,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정답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이번 정부에서 하기 바란다. 그래야 5년, 10년 후를 기약할 수 있다.

마침 새 정부 출범 3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국정보고대회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자화자찬 수준의 성과 포장이 아니기를 바란다. 보다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대증요법 수준의 단기처방은 외려 병증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 존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진짜'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앙시앙레짐을 훌쩍 뛰어넘는 국가개조 수준이어야 한다. 멀리 보고 준비해 실천하라는 의미다. 정파와 이념의 문제를 떨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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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좋은 의사는 병이 피부에 있을 때 치료하고자 한다. 더 좋은 의사는 남들이 손대지 못하는 난치병을 고치는 이다. 하지만 정말 훌륭한 의사는 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더 중점을 두는 법이다. 국가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