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불가능한 수술, 3D모델링-프린팅이면 할 수 있죠”

[인터뷰] 박상준 메디컬아이피(Medical IP) 대표

디지털경제입력 :2019/01/11 17:33    수정: 2019/01/11 17:34

환자 생명이 걸린 수술을 미리 연습해 실수는 방지하고 최선의 수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레지던트(전공의)나 인턴(수련의) 역시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수술 경험이 절실하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의료 현장에 도입될 때 의료업계가 가장 바라는 혁신 중 하나가 수술 시뮬레이션인 배경이다.

메디컬아이피(Medical IP)는 3D모델링과 3D프린팅, 가상현실(VR) 기술로 리허설 수준의 수술 시뮬레이션을 가능케하는 국내 의료영상 분석 및 3D프린팅 소프트웨어(SW)기업이다.

2015년 서울대학교병원 원내 벤처 1호 기업으로 시작해 기술 자립을 위해 연구 개발에 매진해온 메디컬아이피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유명하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북미영상의학회(RSNA) 의료 3D프린팅 분야 키노트에 유일한 아시아지역 연사로 섰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사진=지디넷코리아)

지난해 7월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로부터 Hype Cycle for 3D Printing과 Hype Cycle for Healthcare Providers 부문에서 ‘수술 계획용 3D프린팅 인체 장기 모형’ 참고 기업으로 선정됐다.

박 대표는 국내 기업 최초로 국제 의료 3D프린팅 기술표준을 제정하는 미국재료시험협회(ASTM)와 ISO/TC 261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추진하는 3D프린팅 맞춤형 의료기기 제조공정별 GMP 가이드라인 제정에도 참여했다.

9일 기자와 만난 박 대표는 “15년간 이 분야 기술을 연구해왔다”며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상당수가 해외 기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지만 메디컬아이피는 100% 자체 기술로 SW를 개발했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데다 기술력으로 봤을 때 경쟁사도 글로벌 3D프린팅 SW기업 머티리얼라이즈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메디컬아이피의 솔루션은 ‘메딥’(MEDIP)과 ‘아낫델(ANATDEL)’ 2가지다. 메딥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2차원 의료영상을 3D모델링해 3차원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 이 작업에는 AI 기반 분석, 영역 추출, 분할, 화질 개선, VR 등 다양한 기술이 들어간다. 메딥은 2017년 2월 국내 3D프린팅 분야 최초로 의료기기 2등급 승인을 받기도 했다.

아낫델은 시각화한 3D모델링 데이터를 3D프린팅하는 솔루션이다. 메디컬아이피는 국내 전문기업과 컨소시엄을 맺고 소재와 장비, 후처리 기술도 연구해 환자 장기 모양과 똑같은 것은 물론 촉감, 질감도 흡사한 맞춤형 장기 모형을 출력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장기를 정확하게 3D모델링하려면 의료영상 생성 원리부터 딥러닝 기반 분할, 고급 영상처리 기술까지 모두 받쳐줘야 한다”며 “여기에 3D프린팅 기술력까지 갖추니 머티리얼라이즈, 스트라타시스 같은 곳에서 오히려 연락이 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두 솔루션은 처음부터 사업화를 생각하지 않고 의료 현장에 필요한 SW를 고민해 고도화한 결과 현재 수준에 도달했다. 메딥은 프로토타입만 9개였다”며 “솔루션 개발 과정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 100여명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다보니 성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메디컬아이피의 솔루션 메딥은 30초만에 심방-심실 구분 3차원 심장 분할이 가능하다.(사진=메디컬아이피)

■ VR+장기모형으로 최적의 수술 방안 찾는다

메딥의 기술력은 모델링 시간에서 바로 드러난다. 머티리얼라이즈의 3D의료영상 처리 SW 미믹스(Mimics)가 모델링을 완료하는 데 30분이 걸린다면 메딥은 30초면 끝이다. 방사선사가 직접 작업하면 3~4일이나 걸리는 작업 분량을 순식간에 끝낸다. 주변에 인접한 장기가 많고 대조 대비도가 낮아 분할이 매우 어려운 간 분할, 모델링 작업도 5초 정도면 완료한다.

또 다른 강점은 VR로 마치 환자 몸속에 가상 내시경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세밀하게 환자 인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진은 VR 헤드셋과 햅틱 또는 모니터와 마우스를 이용해 3차원으로 구현된 환자 혈관, 장기 등을 돌아다니면서 최적의 수술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이밖에 메딥은 CT나 MRI 영상에서 라디오믹스(Radiomics)도 측정, 분석해 결절 위치와 크기도 수치화할 수 있어 연구나 진단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라디오믹스는 사람 눈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정량적 영상 형태를 알고리즘을 통해 병변을 특성화하는 기법이다.

박 대표는 “VR 기능을 활용하면 3D프린팅 모형 출력을 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다. 매번 모형을 출력하면 비용과 시간문제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메딥은 어느 신체 부위든 분할, 3D모델링이 가능하며 라디오믹스 분석도 할 수 있어 법의학과를 포함해 병원의 모든 과가 사용할 수 있다”며 “수술 전에는 수술 리허설을 가능케 하며 응급실에서도 재빠른 조치 결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낫델로 출력한 장기 모형으로 최적의 수술방법을 찾아낸 사례들도 가장 권위 있는 영상의학 포털 앤트미니 닷컴(AuntMinnie.com) 1면에 게재되거나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들이 메딥과 아낫델로 출력한 간 모형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후 실제 수술에서 98개 종양 중 97개를 찾아내 제거한 사례도 나왔다.

박 대표는 “간에서 종양을 떼어내는 기존 수술에선 멀쩡한 세포도 할 수 없이 자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메딥과 아낫델을 이용해 종양이 있는 부위만 제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정밀 의료 핵심인 의료 이미징을 실현시킨 것이다. 메디컬아이피는 현재까지 환자 신장 3D프린팅 모형 100개 이상을 서울분당병원 등에 공급했다. 2014년부터 솔루션 논문 인용도 500회가 넘는다”고 말했다.

메딥과 아낫델은 의료 교육 솔루션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메딥은 지난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수업 자료로 채택되기도 했다. 일본 기형심장수술 전문가 오자키 시게규키 도호의대 교수도 아낫델로 출력한 심장 모형으로 수술 시연을 벌인 바 있다.

메디컬아이피가 자체 개발한 솔루션 메딥과 아낫델을 이용해 출력한 장기 모형.(사진=메디컬아이피)

■ 내년 상장 목표…중국·싱가포르 법인도 설립

메디컬아이피는 이같은 기술력과 업계 신뢰도를 발판 삼아 미국, 유럽, 싱가포르, 중국 등 세계 각 지역에 솔루션을 수출하고 있다. 매출 비중도 해외가 80%로 훨씬 많다. 미국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지사도 설립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기술 개발에만 집중했다면 올해부터는 업무 협약(MoU), 신규 솔루션 공개, 사업 영역 확대 등 활동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내년까지 코스닥 상장을 포함해 ▲중국 시안에 해외지사 설립 ▲미국 스탠포드대와 미네소타대, 하버드대 중심으로 북미시장 레퍼런스 구축 ▲동남아시아 허브 역할 하는 싱가포르 법인 설립 ▲싱가포르 국립대, 국립암센터와 전략적 제휴 등도 목표로 잡고 있다.

회사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솔루션 가격도 자체 개발로 경쟁사 제품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훨씬 낮은 만큼 목표 달성에 자신감이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우리 기술력을 보고 협업하자는 연락이 많이 온다”며 “올해부터 다양한 기술 개발을 위해 글로벌 기업 등과 MoU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술 세미나도 열고 사업 전략 등을 알렸는데 각계각층 전문가들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메디컬아이피는 앞으로도 의료영상 같은 무형 데이터를 SW로 가치 있게 활용하고 3D프린팅으로 가시화해 환자 생명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회사 슬로건 ‘Empowering Medicine, Saving Lives’에도 이같은 철학이 녹아있다. 현재 그리는 최종 목적지는 맞춤형 인공장기를 출력, 이식해 인간 생명 연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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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본인은 컴퓨터공학 출신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도 직접 환자를 보는 건 아니었다. 연구는 그 자체로 의미는 있었지만 갈수록 환자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이후 직접 의료 현장에 필요한 SW를 개발했더니 동료 의사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피드백도 주면서 자연스럽게 메디컬아이피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솔루션이 나온 후 활용 사례가 500개를 넘어가고 환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큰 성취감을 느꼈다”며 “현재 의료 교육 현장에서도 쓰이고 있는데 앞으로도 정밀 의료 영역에서 메디컬아이피가 계속 역할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