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케이프 헬스케어 창업 성공기

희귀질환 환자 건강정보 분산원장에 기입해 신뢰↑

인터넷입력 :2019/01/06 10:13    수정: 2019/01/06 10:15

‘경영학부 출신’ 스타트업 대표가 만든 ‘희귀질환 신약 개발’을 위한 블록체인 서비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언뜻 블록체인과의 조합을 상상하기 어려운 대학 전공과 사업 아이템임에도 이 서비스는 카카오 계열 메인넷 클레이튼에 탑재가 확정될 정도로 가능성을 입증 받았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먼스케이프의 장민후 대표㉜는 공통된 희귀질환을 앓는 환우회 소속 환자들이 참여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개발했다. 환자들은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원장에 자신의 건강 정보(PGHD, Patient-Generated Health Data)를 기입하게 되기 때문에, 정보를 함부로 공개하길 꺼렸던 이들도 충분히 참여할 동인이 된다.

환자의 동의를 받고 기록된 PGHD는 의료기관 단에서 수집하는 전자의무기록(EMR)과는 달리 제3자 기업의 유통 및 가공이 가능하다. 회사는 이들의 정보를 보험사, 제약회사 등에 판매함으로써 블록체인 참여자들에게 수익을 되돌려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가 만든 메인넷 클레이튼이 올해 2분기 중 정식 개시될 예정인 가운데, 휴먼스케이프도 이에 맞춰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회사는 아직 서비스 명칭을 공개하지 않았다.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

장 대표의 창업 이야기의 시작은 그가 서강대 경영학부 3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2013년 12월 교내 창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때로 돌아간다. 당시 구상한 아이템은 임산부에게 유용한 정보를 시기적절하게 알려주는 달력 앱이다. 이는 장 대표가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됐고 이후 수차례 사업 수정(pivoting)을 거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거듭나게 됐다.

지디넷코리아는 3일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휴먼스케이프 사무실에서 장 대표를 만나 그가 걸어온 창업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창업 초기부터 헬스케어 분야에만 집중"

장민후 대표의 휴먼스케이프 팀은 학내 창업경진 대회 때 구성됐다. 여기서 임산부를 위한 달력 앱을 출품할 때만 해도 “반드시 IT 분야에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장 대표의 팀이 최우수상을 받게 되면서 특전으로 장 대표가 대표로 실리콘밸리를 방문하게 됐고, 이때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 이정웅 대표, 샌드버드 김동신 대표 등 유명한 벤처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창업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됐다.

장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갔었을 때 나는 아직 창업을 시작했다고 할 수도 없는 단계였는데 그때 동행한 유명 창업가들이 사업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며 “실리콘밸리에 다녀온 뒤인 2014년 초부턴 임산부를 위한 달력 앱을 실제 서비스화 했고 베이비페어 등에도 활발히 홍보하면서 사용자를 유치했으나 수익 모델을 떠올리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수차례 사업을 피봇팅 할 때마다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큰 교훈을 얻었다. 임산부 달력에서 처음 고배를 마셨을 땐 헬스케어 시장에서 가능성은 확인했다. 이후 지하철 역에 붙은 수많은 성형외과 광고들을 보고 헬스케어 중에서도 돈을 지불할 용의가 큰 분야는 성형 분야라고 생각했다.

이에 장 대표는 지체 없이 그해 하반기 ‘거울아거울아’라는 앱을 개발하며 두 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 올리면 병원 측에서 성형 견적을 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의사면허가 없는 성형외과 코디네이터 등이 이를 대신하고, 성형을 권유할 소지가 있는 점이 문제가 돼 두 달 만에 또다시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

장 대표는 “법적인 허들을 넘지 못해 크게 좌절했었다. 처음 실패한 것도 아니고 서비스 개발에 시간도 많이 들였다”면서 “하지만 이때 병원에서 충분히 지불 용의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우리의 서비스가 좋았다고 도와주겠다고 해 다음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휴먼스케이프 팀은 성형 시장에서 또 다른 니즈는 없을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에 성형외과 수술 후 관리법에 대해 궁금해 하는 환자들이 많지만, 병원은 환자가 만족할 만큼의 애프터케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장 대표는 환자가 성형외과 수술을 받은 후 적절한 관리법을 안내해주는 ‘헬렌’이란 솔루션을 개발했고, 이를 병원에 납품하는 수익 모델을 세우면서 2016년 8월엔 매쉬업앤젤스로부터 1억5천만원의 시드투자를 받았다.

■신뢰 있어야 얻을 수 있는 '환자 정보', 블록체인이 돌파구

스타트업의 뚜렷한 성장을 보여주는 ‘J 커브’를 기다렸지만, 헬렌의 수익성은 불안정했다. 병원에서 납품단가를 후려칠 때도 있었고, 영업사원들의 노력에도 성과가 미미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데이터란 자산이 남아있었다. 장 대표는 여태껏 헬스케어 서비스들을 운영해 본 결과 환자의 건강 정보를 제3자에 제공하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병원과 함께 해왔을 때와는 달리 비 의료기관인 휴먼스케이프가 주체가 돼 환자 정보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 대표는 “의무기록은 서비스 권한 밖이었고 이에 환우회로부터 건강 정보를 얻고자 했다”며 “처음엔 대차게 한 환우회 회장을 찾아가 대략 ‘저희가 돈을 벌어보려는데 함께 하시죠’라고 들릴 만큼의 포부를 밝혔더니 잡상인 취급을 당하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마침 이때는 휴먼스케이프 내 테크팀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다. 환우회에서 환자의 건강 정보를 수집하는데 신뢰성을 담보로 한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시키면서 휴먼스케이프는 사업 개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작년 초부터 백서 작업에 들어갔고, 10월엔 테스트넷을 열어 초기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해 큰 관심을 모았다. 작년엔 케어랩스 등으로부터 3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휴먼스케이프 커뮤니티 개념도

장 대표는 “기존 환우회 커뮤니티는 환자와 그의 보호자들이 모여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있다. 무기력한 분위기도 있다”면서 “하지만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 정보를 공유하는 생산적인 활동을 가능케 함으로써 신약 개발에도 도움을 주고, 의료 산업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가 환우들의 건강 정보를 보험사, 제약사 등에 제공한 뒤에 얻은 수익을 환자들에게 흄 토큰으로 되돌려줄 것이다”며 “표본을 적게 잡으면 두 달 안에도 환자가 자신의 정보로 흄 토큰을 얻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휴먼스케이프의 코인인 흄 토큰은 메인넷 클레이튼의 코인인 클레이와 환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메인넷 내 다른 디앱들과 토큰 경제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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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건강 정보는 스마트폰, 핏비트와 같은 헬스케어 기기를 통해 정량적으로도 수집된다. 장 대표는 휴먼스케이프 커뮤니티 운영 초기엔 3억 5천명 유병 인구를 가진 희귀질환에 초점을 맞추지만, 향후엔 이외 질병까지 확장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환자 커뮤니티 이름은 휴먼스케이프고, 아직 디앱 이름은 정하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환자의 건강 정보가 환자 본인이 중심이 돼야 하고, 그래야 의료 산업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