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의 溫技] 넥슨 김정주의 아쉬운 Exit

데스크 칼럼입력 :2019/01/03 11:31    수정: 2019/01/09 10:19

#투자 업계에 엑시트(Exit)란 용어가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용어는 1990년대 말 벤처 붐이 일어났을 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적절한 시점에 이익을 남겨 빠져나오는 방식이다. 창업한 뒤 막대한 자본이익을 남기고 회사를 팔아넘긴 오너들에게도 이 말은 해당된다. 벤처 업계엔 이런 엑시트 신화들이 존재한다.

#엑시트는 스타트업 창업 환경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투자를 통해 더 커진 자금이 더 많은 스타트업에 재투자 되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창업 천국으로 칭송되는 데는 그 역할도 크다. 한국에서도 좋은 사례는 있다. 대표적인 게 크래프튼의 장병규 의장이다. 그는 검색 업체 ‘첫눈’을 창업한 뒤 매각한 대금으로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성공시켜냈다.

김정주 NXC 대표.

#넥슨 설립자 김정주 NXC 대표가 엑시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회사 구조조정 차원에서 개별 자회사를 파는 게 아니라 그룹 전체를 통째로 넘기는 거다. 이미 매각 주관사를 선정했고 추후 그 규모가 확정되겠지만 매각대금이 적어도 10조 원 가량 된다고 한다. 이런 규모의 엑시트는 국내에서 과거에 존재한 적이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쉽사리 나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전무후무할 수 있다.

#그로서는 대한민국 엑시트 역사에 가공(可恐)할만한 기록을 세우는 것이겠지만, 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당혹스럽다. 그 규모가 전무후무할뿐더러, IT 분야는 물론이고 모든 업종에서 업계 1위의 대기업 오너가 회사를 매각한 사례도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가 이 소식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대체 그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부 언론이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한 마디로 “지쳤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게임 업종에 대한 외부의 좋지 않은 시선과 규제다. 이로 인해 게임의 성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추정이다. 둘째,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인 진경준 전 검사장의 ‘공짜 주식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세파에 시달렸던 것도 심사를 지치게 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연인으로서 즐겁고 행복하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 권리가 있는 만큼 그의 복잡한 심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업계가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뭔가 아쉽고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도 그렇지만 대기업의 총수도 질주하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 탄 사람이다. 내리고 쉽다고 그냥 내려가 버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고난 속에 의무를 다할 때 ‘기업가 정신’이 나온다.

#국민이기도 한 소비자에게 지탄 받고 때론 감옥까지 오가야 했던 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그 숱한 모욕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건 단지 돈 때문이 아니다. 차고 넘쳐 오직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이 그 인생에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달리는 호랑이 등’이란 그런 것이다. 그게 정녕 벅차다면 회사를 단순 매각하는 것보다 모두에게 이로운 다른 선택도 많았을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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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망이 밝지 않다거나 뭔가 기분이 나빠 지분을 몽땅 팔고 나오는 것은 소액주주나 전문 투자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더구나 그 지분이 외국계에 넘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힘들고 기분 나쁘더라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혹은 SK텔레콤이나 네이버의 대주주가 경영권을 외국에 넘길 것 같은가.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 국민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 때문이다. 그의 가공할 엑시트를 다른 사례와 달리 신화로 칭송할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이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