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끄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기술 유출 문제가 내년에 더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 1년간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대응방안을 찾아 나섰지만,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기술·인력 유출 문제를 막을 뾰족한 대책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핵심 산업의 기술 유출은 기업과 국가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 때 국내 업체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은 이제 중국의 기간산업이 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업계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진행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기술·인력 유출 대응 논의를 내년에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 기술·인력 유출 대응 논의 내년에도 지속 대응
산업 기술·인력 유출에 대응하는 논의의 장은 올해 초 기술보안협의회가 결성되면서 구체화됐다. 기술보안협의회는 국정원 산하의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주축으로 나선 ‘정부·협회·기업간’ 통합 협의체다.
정부 측에선 산업부 국가핵심기술 담당자와 반도체산업협회·디스플레이산업협회 등 민간단체,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기업체가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협의회는 올해 상반기부터 수차례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업체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술 유출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전담 부서로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로 이 회의에서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과 관련된 정보 수집이 동시에 이뤄져 경찰과 검찰의 수사로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몇 차례의 회의를 진행했음에도 기술 유출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술 빼돌리기'와 불가분의 관계인 인력 유출을 원천 봉쇄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수사 당국은 중국 등으로의 개인별 이직 사례에 집중하는데, 기술을 빼돌린 정황 증거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개개인의 이직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

■ 산업기술 유출 상황 '심각'…"매년 늘어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로 산업기술 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건은 총 150여건에 이르고, 경찰이 검거한 산업기술 유출사건은 약 700건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산업기술 유출 시도가 해가 갈수록 더 치밀해지고 그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기술 빼돌리기 시도의 주를 이루는 건 인력 유출이다. 5년 이하 경력의 기술자부터 임원급 고위 인사들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8월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전직 고위 임원이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에 입사한 일은 업계에 충격을 줬다.
경력 이직자들을 유혹하는 가장 큰 요인은 국내 업계 대비 높은 임금과 복지다. 업계에 따르면 이직자들은 국내 업계 평균 대비 적게는 3배, 많게는 5배에 달하는 임금을 약속받고, 자녀 교육비와 교통·통신비, 주택자금도 지원받는다.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인력은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 "경험 많은 기술자 이직 강제할 방법이 없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건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해를 넘기며 연초부터 본격적으로 인력 유출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경쟁국인 중국에선 국영 반도체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3차원(3D) 낸드플래시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4세대 64단 낸드를 시범 양산한 것으로 알려진 YMTC는 내년 하반기부터 6세대(V6) 128단 3D 낸드를 개발해 2020년 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BOE·차이나스타(CSOT) 등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OLED 전환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 인력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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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128단 낸드는 현재 국내 업계가 개발에 몰두하는 제품"이라며 "4세대에서 6세대로 건너뛰겠다는 자신감이 한순간에 어디서 나왔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처럼 투자와 자본이 활발한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임금과 복지가 더 좋은 곳으로 눈을 돌리는 기술자들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