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타까운 세종 스마트시티 '혁신'

이상으로서의 공유와 현실로서의 사유의 갈등

기자수첩입력 :2018/12/21 11:20    수정: 2018/12/21 14:57

혁신은 고달프다.

가치를 담아내는 말은 가슴 뛰고 설레지만, 늘 고달픈 법이다. 그래서 ‘혁신’은 어쩌면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장 많이 수습하지 못하는 단어 중 하나다.

오래된 제도와 조직을 새롭게 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제도와 조직이 오래됐다는 건 그만큼 기존 제도와 조직이 어느 정도 효율성과 안정성을 갖고 운영됐다는 말이다. 시대나 가치관이 변해 혁신이 필요한 시기가 왔을진 몰라도 당시에 그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혁신은 더욱 어렵다. 기존에 인정받아 온 방식을 버리고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택하는 일은 많은 우려와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진=PIXTA)

혁신처럼 새로운 길을 가려다 우려와 반발에 부딪히는게 또 있다.

공유(共有)다. '한국의 우버'는 택시기사들 반발로 달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혁신’과 ‘공유’간 공통점이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이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자만 해도 혁신과 공유를 경험해 본 적이 드물다. 혁신을 해보기는 커녕, 기존 제도와 조직에 철저히 맞춰 살아왔다.

획일적 주입식 교육이라 욕하면서도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에 맞춰 초중고등학교를 지나 지금의 사회인이 됐다. 대안학교나 홈스쿨 같은 새로운 학습 방식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새로운 대안 경제로 부상한 '공유'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귀찮고 번거롭다. 기자도 아직 누군가와 한 물건을 꾸준히 공유해본 적이 없다. 한집에 사는 동생과 옷을 공유하는 일조차도 늘 언쟁의 불씨가 되곤 했다. ‘내 것’이 많은 자가 승자인 사회에서 늘 ‘내 것’을 갖길 원했다.

이렇게나 어려운 ‘혁신’과 ‘공유’를 모두 담아내겠다고 한 도시가 있다. 세종시에 위치한 5-1생활권이다. 세종 5-1생활권은 83만 평 여의도 면적만 한 백지상태 지역으로, 올 1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는 정부가 내세운 일종의 ‘실험 도시’다. 4차산업혁명을 이끌 기술이라고 흔히 말하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블록체인은 이미 완성된 기존 도시에는 규제와 제약으로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없으니, 백지상태의 이곳에서 인프라를 비롯한 도시 외형부터 새로 설계해 실험해 보자는 취지다.

정부는 세종 5-1생활권의 총괄계획가(MP)로 뇌 과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를 선임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공급자 위주 도시 설계에서 벗어나 행복과 공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온 뇌 과학자에게 도시 설계를 맡긴 것이다. 그는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를 많이 쓴 '스타 과학자'이기도 하다.

정부가 정재승 교수를 MP로 선정한 것은 보여주기식 인사일 수 있지만, 정말로 혁신을 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굳은 의지일 수도 있다. 후자라면 스마트시티 MP 인사에서 ‘혁신성’을 놓치진 않은 셈이다.

하지만 도시는 MP 혼자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정부를 비롯해 해당 지자체, 시행사, 기업, 시민들의 적극적인 공조 없이는 ‘실험 도시’의 본래 취지와 혁신은 실현될 수 없다.

정재승 MP는 지난 7월 세종 5-1생활권의 기본구상안을 발표했다. 그는 세종 5-1생활권의 큰 방향성을 ‘공유차 기반의 혁신 도시’로 내세웠다. 소유 자동차를 세종 5-1생활권 진입 입구에 주차하게 하고, 5-1생활권 내부는 자율주행차와 공유차, 자전거 등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구상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소유 자동차의 비효율성을 줄여 경제적 효과와 교통체증을 한 번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발표 당시, 정 MP의 이런 구상에 동조하고 박수를 보낸 이는 많지 않았다. 행정 관청인 세종시와 행복청, 시행사인 LH, 그리고 언론과 시민들도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표했다.

" ‘내 자동차’를 비싼 유지비와 심각한 교통 체증에도 불구하고 소유하는 이유는 편리성 때문이다. 내 집 문 앞에 나와 언제든 마음대로 타고 내가 원하는 곳 앞까지 갈 수 있는 소유 수단을 포기하라는 것인가"하는 반응이 나왔다. ‘내 자동차’ 없이 어떻게 공유 차량만으로 도시에서 살 수 있냐는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는 그런 도시를 경험해 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공유 물건이 내 소유 물건보다 편할 것인가도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이에 정 MP는 자율주행차를 이용해도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고, 소유차가 없이도 시민들이 기꺼이 걸어 다니며, 공유차가 소유차보다 더 편리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설명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 MP는 한발 물러났다. 아니 한 발이 아니라 어쩌면 거의 절반 이상의 후퇴다. 정 MP는 지난 19일 공청회에서 공유차 전용 운영 지역을 기존 5-1 생활권 전체에서 생활권 내 8분의 1 지역으로 대폭 축소하는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정 MP가 거의 백기들 든 셈이다.

세종 시범도시의 ‘혁신성’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너무 이상적" "너무 혁신적"이라는 비판과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우려 속에 깎여 나가고 있다.

현실성은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철학만 가지고 도시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니.

하지만 ‘실험 도시’를 내세운 시범도시라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현실성보다 혁신성에 더 무게를 둬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자고 만든 도시가 아니던가.

혁신성보다 현실성을 우선으로 한다면 기존 신도시 개발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혁신성에 우려와 비판을 보내기 이전에 혁신성을 어떻게 담아낼지 그 혁신의 방안에 조금 더 같이 머리를 맞대는게 필요한 게 아닐까.

정 MP는 공청회에서 이런 우려와 비판을 인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디에선가는 이런 실험이 벌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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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시범도시의 실험이 끝난 5년 후, 그제야 다시 ‘혁신’을 말하며 ‘실험’이 필요하다고 뒤늦은 후회와 똑같은 시도를 되풀이하지 않을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의 혁신 실패는 한 과학자의 실패일까, 우리의 실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