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은행계 CSI 있다?...“가짜돈 꼼짝마”

[지디가 간다]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금융입력 :2018/12/17 14:32    수정: 2018/12/17 15:35

손예술, 백봉삼 기자

그런 상상 한 번쯤은 해보시지 않았나요. 화폐를 찍어내는 기계가 우리집 지하 창고에 있어서 일하지 않고도 돈을 '펑펑' 쓰는 황홀하면서도 범죄적인 '망상'. 이 때문에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는 기계나 동판, 노하우를 탈취하는 범죄조직과, 이를 사수하려는 국가정보기관의 액션 영화도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게 만들죠.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범죄자들이 위조지폐 제작에 가담하는 이유는 화폐 액면가치에 비해 제조비용이 낮기 때문입니다. 1만원짜리 지폐는 시장에서 1만원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사실 단가는 종이와 위변조방지장치, 인건비, 기계 사용료 등을 다 포함해 80원정도라고 합니다. 위조지폐가 많이 유통되면 유통될 수록, 화폐 가치에 대한 신뢰는 붕괴되고 결국 노동의 가치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만들겠죠.

맑은 물을 흙탕물로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위조지폐를 사전에 걸러내, 시장의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KEB하나은행의 위변조대응센터를 '지디가 간다' 멤버들이 최근 방문했습니다.

■ 일평균 5억~6억달러의 돈 집결…위조 여부 가린다

왼쪽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백봉삼 기자, 손예술, 기자, 안희정 기자,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는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 지하 1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45개국의 화폐를 전시해 놓은 부스와 센터장의 집무 공간, 위조화폐를 가려내는 세 개의 연구실로 구성돼 있습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연구실에는 위변조 감별 기계 세 대가 배치돼 있으며, 기계 소리가 큰 만큼 내벽에는 흡음판이 부착돼 있습니다. 중앙 연구실을 기준으로 좌측은 원화, 우측은 달러나 엔화 등 외국화폐들의 위변조 요소를 살펴보는 연구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KEB하나은행 이호중 위변조대응센터장은 "KEB하나은행 지점의 돈, 중·소형 은행들이 영업시간 마감 후 돈을 보내오는데 일평균 5억달러에서 6억달러"라고 설명했습니다. 들어온 돈이 마감할 때 어느 은행 어느지점에 있었다를 '띠 지'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생전 만져보지도 못할 돈이 오가다 보니 CCTV도 8대가 설치돼 있으며 불이 났을 경우를 대비해 별도 소방장비도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중앙 연구실에는 아주 고액의 위변조 탐지기계가 설치돼 있습니다. 자그마치 한 대의 값이 3억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비를 갖춘 곳은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KEB하나은행 뿐이라고 하네요.

3억원짜리 기계에 100달러 한 뭉치 1만달러를 넣어봤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지폐들을 감별합니다. 우리가 은행에 가면 흔히 보는 지폐 장수 세주는 기계랑 비슷하죠. 하지만 돈을 세는 것이 아니고 위변조 요소가 있는지 등을 걸러내줍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지폐를 별도 공간에 떨어뜨려줍니다. 연구원은 별도로 분리된 지폐를 눈과 촉감으로 확인합니다. 찢어지거나 구겨진 손상화폐 역시 결러내주기 때문에 이를 확인해 주는 것도 사람의 몫입니다.

혹여 손상화폐도 아닌데 걸러냈다? 이 경우에는 뒤에 배치한 30배 줌이 가능한 고성능 장치를 이용해 위조여부를 판별합니다. 30배줌에 100달러 지폐를 놓자 옷깃에 자그마한 글씨로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써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연구원이 처리하는 지폐 수는 50만장이라고 합니다.

■ CSI 장비도 마련…과학적 증명도 OK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연구원이 자외선, 적외선 등을 이용해 100달러 위조 여부를 감별해 보고 있다.

중앙 연구실의 우측에는 외국 지폐와 동시에 TV에서만 봤던 CSI가 쓰는 장비도 구비돼있습니다. 이 장비는 약 1억원정 도입니다. 장비 안에는 고성능 카메라와 자외선·적외선 등을 쏠 수 있는 조명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자외선·적외선·가시광선을 측광이나 정면에서 비춰 지폐의 위변조 여부를 판별합니다.

5만원권 지폐를 넣어봤습니다. 적외선을 비추니 누렇던 5만원 색깔이 모니터 화면에는 흑백으로 바뀝니다. 얼굴도 테두리만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자외선을 비춰 봤습니다. 형광색으로 지폐가 빛이 납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폐 중간 중간에 1㎜의 선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신사임당 옷깃에 'ㄱㄴㄷㄹ'의 자음도 나타난 것이죠.

이호중 센터장은 "작은 실들은 색사(色絲)라고 하는데, 가시광선이 아닌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비추면 나타난다"며 "이 장비들은 언제봐도 누가봐도 동일한 값을 내 과학적 증명을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혈액 B형인 사람에게 A형 수혈하면 죽는다"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이쯤되면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시중은행 중에 KEB하나은행만 위변조대응방지센터가 있는 것이고 3억원짜리 기계를 다수 보유한 것일까요.

이호중 센터장은 그 이유로 비용과 인력 부족을 꼽았습니다. 이 센터장은 1995년 외환은행으로 입행해 화폐를 다뤘습니다. 이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출범하면서 이 곳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국가정보원에서 일하다가 2013년 KEB하나은행에서 위변조대응센터를 만들면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네요.

이 센터장은 "첫 출범 당시에도 엄청난 기계값 때문에 비용만 허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면서 당시를 소회했습니다. 여기에 위조화폐를 감별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적었지요. 그렇지만 이 센터장은 "손상된 화폐를 미리 걸러내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돼 사실 비용 문제는 일단락 됐다"고 웃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지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구권에는 위변조방지를 위한 기능이 적었기 때문이지요. 현재 우리 지폐 중에 가장 비싼 위변조방지 기능은 무엇일까요? 바로 5만원권 지폐 가운데에 있는 홀로그램성 띠 입니다.

지폐를 위·아래·양옆으로 움직이면 보이는 문자와 모양이 바뀌지요. 이 센터장은 "투명 비커에 막대를 넣으면 막대가 휘어보이듯 굴절돼 보이는 원리와 비슷하다"며 "위변조 방지 기능 중 가장 비싸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KEB하나은행의 위변조대응센터에는 매년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습니다. 1년에 10명 정도를 KEB하나은행 직원 중 자발적 신청으로 받아 뽑고 있습니다. 6개월 간의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며,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직원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합니다. 경쟁률은 5:1이라고 합니다.

관련기사

최근 은행 영업 마감 후인 오후 6시에 본격 일을 해야 하는 애로사항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다양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센터장은 "혈액형이 B형인 사람한테 A형의 피를 수혈하면 죽는다. 자본주의 역시 화폐 가치 신뢰를 근간으로돌아가고 있다"며 "이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