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의 날'에 소환된 회전문 인사의 교훈

[박승정칼럼] 강만수와 김수현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26 10:45    수정: 2018/11/28 08:30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김&장이 홍&김으로 교체된 얼마 전 문고리 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때마침 ‘국가 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도 개봉할 참이다. 영화는 김영삼정부 시절 IMF(국제통화기금)사태의 당사자이면서도 이명박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컴백했던 강만수를 소환했다.

1997년 강만수. 환율 주권론자인 그는 김영삼정부의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IMF사태를 초래한 경제정책의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을까. MB는 그런 그를 10년 만에 다시 ‘747 정책’의 설계자로 중용했다. MB의 주요 정책은 기획재정부 장관인 그의 손을 거쳤다.

당시 IMF사태는 국민 대다수를 절망의 도가니로 몰았다. 특히 서민들의 피맺힌 절규는 오래도록 대한민국의 아픔으로 남았다. ‘MB노믹스’를 주도한 그는 훗날 IMF사태의 고통을 외려 축복이라 두둔했다. 명백한 실패조차 인정하지 않고 왜곡한 그는 뻔뻔한 관료의 표본으로 남았다.

새롭게 출범한 MB정부는 747 정책의 미명 아래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정책에 집중했다. 이른바 낙수효과론으로, 대기업을 집중 지원해 그 파급효과가 중소기업과 국민경제에 고루 스며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대대적인 세제혜택과 30% 이상 끌어올린 고환율 정책이 대표적이다.

부담은 국민 몫이었다. 덕분에 수출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잔치를 벌였다. 외국 투기자본 역시 주린 배를 한껏 불렸다.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 4대강 사업 역시 대기업의 젖줄이 됐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중소기업들은 키고(KIKO)의 여파로 줄도산의 아픔을 겪었다. 두 번째 실패였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사진=네이버)

■ IMF사태 당사자 강만수, MB정부 중용 ‘아이러니

2005년 김수현. 노무현정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으로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주택정책의 패장이었다.

참여정부는 당시 임기 첫해인 2003년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골자로 한 10·29대책을 시작으로 12번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임기 5년간 서울 아파트 값은 56.4%나 폭등했다. ‘집값만은 절대 잡겠다’던 그의 호언은 허언이 됐다.

집값 폭등과 서민 경제의 악화로 모든 안 좋은 현상은 ‘노무현 탓’이 됐다. 개혁은 줄줄이 좌초했고 정권의 지지율은 바닥을 맴돌았다. 주택 정책과 경제 정책의 실패는 다름 아닌 재벌언론과 기득권층의 공격 탓이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지만 한 번 등을 돌린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다시 문재인정부의 ‘J노믹스’의 설계자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J노믹스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핵심이다. 두 정책의 기반인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제, 규제완화 정책은 아직도 여야 정파 간 갑론을박 중이다. 하지만 그가 호언했던 ‘성장’은 어디에도 없다.

결과론으로만 보자는 얘기다. 결국 서민들만 더욱 힘들어졌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제는 소기업, 자영업자, 스타트업, 서민들의 일자리를 먼저 갉아먹었다. 현실 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오히려 힘없고 소외된 서민들의 지갑을 털었다. ‘낙수효과론’의 재판이다.

부동산 정책은 더욱 극명하다. 유사 이래 최고의 폭등세를 낳은 부동산 정책은 온전히 그의 작품이다. 한 두 달 만에 몇 억이 뛰었다. 그의 정책은 ‘빚내서 집을 사라’던 박근혜정부 때보다 훨씬 큰 폭으로 수도권 집값을 끌어올렸다.

부자들의 배만 불렸다. ‘촛불’ 든 서민들이 먼저 절망의 늪에 빠졌다. 현재로선 두 번째 정책 실패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는 더 막중한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꿰찼다.

오기 인사일까, 정실 인사일까. 박근혜정부를 비판했지만 오히려 더 회전문 불통인사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사청문회에서조차 논란이 많은, 박근혜정부보다 더 많은 일방 인사를 강행했다. 정권 출범시 제시됐던 인사 기준도 ‘내로남불’이고 기대했던 개혁도 구호만 요란했다.

강만수와 김수현. 사실상 두 정부의 경제사령탑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둘다 공히 인사 문제가 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수현은 현직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점에서 단정할 수 없지만 이미 드러난 현상만 보면 정책실패를 만회하기는 어렵다.

강만수(왼쪽)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뉴스1)

■ 참여정부 집값 폭등 김수현, J노믹스 전면 등장 ‘갸웃’

실패한 인사는 다시 쓰지 않는 법이다. 국정(國政)은 특히 그렇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데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상징성도 있다.

이미 천문학적으로 폭등해 버린 집값이 잠시 주춤했다고 안정화란 공허한 문구를 내세워 침소봉대(針小棒大) 하는 현실을 보라. 반성도 없다. 현실 경제는 위험 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는데도 수치의 함정에 빠져 여전히 끄떡없다는 게 정치과잉에 빠진 그들의 시각이다.

혁신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공유경제를 비롯한 융합신산업은 출발부터 싹이 잘렸다.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한 탓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블록체인,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이른바 ‘딥(deep) 테크’라 불리는 혁신기술 분야의 창업이 부진한 이유다.

모두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도, 정부 부처도 모두 혁신성장의 출발선인 규제혁신에는 의지가 없다. 정치권 출신 각료는 오로지 다음 선거에만 관심을 쏟는다. 청와대 참모와 장관이 딴 맘을 먹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정책은 고사하고 관료사회는 무사안일일 수밖에 없다.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자칫 자만과 오만의 인사가 또 다른 영화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은 IMF사태 20년 만에 놀랍도록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와 경기 부진, 악화된 서민경제, 부동산 폭등, 가중되는 금리환경, 양극화의 덫, 불안정한 대외환경 등 수없이 쌓인 리스크 요인이 그것이다.

마침 제2기 개각 얘기도 오가는 중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라고 했던가. 거듭 말하지만 국가를 이롭게 할 인사라면 정파를 구분하지 말고 삼고초려 하는 포용의 인사를 고민해야 한다. 한 자리 하겠다는 정치권 인사나 보은인사는 단연코 사양해야 한다. 난제를 푸는 첫 걸음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나 테크노크라트를 우대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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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김수현은 두 번의 정책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경제 난독증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를 청와대 참모진에게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의 일독을 권한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