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논란과 공유경제에 대한 재해석

[이균성 칼럼] 플러스 섬 혁신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23 16:04    수정: 2018/11/26 12:45

#카풀 서비스를 놓고 ‘혁신성장’을 주장하는 IT 업계와 ‘생존권 보호’를 내세우는 택시 업계가 평행선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논점 가운데 이재웅 기획재정부 민관합동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 겸 쏘카 대표가 말한 ‘플러스 섬(Plus-sum) 혁신’ 방법론에 대해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대립하는 두 주장이 접점을 찾기 위해 함께 쳐다봐야 할 목표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통상적인 시장(市場)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보통 기술력이나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그리고 가격으로 우열이 판가름 난다. 기업은 거기서 우위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이 사안의 경우 시장보다 사회 문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부가 개입해 판단해야 하고 정치인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 규칙을 만드는 정치 철학의 문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다수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유통매장의 영업을 제한하는 것과 비슷한 이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 법제도를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운송업은 국가가 라이선스를 주는 대신 다양한 규제를 한다. 사회적인 필요 때문이다. 카풀 영업을 위해서는 이 규칙을 새롭게 바꿔야만 한다.

카풀 앱 반대 플랜카드를 내건 영업 중인 택시

#기존 규칙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기술 발전으로 여러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혁신성장을 위해서’다. 기술의 발전으로 더 나은 사업 모델이 생겨나는데 기존 규제가 발목을 잡으니 이를 풀어주자는 논리다. 카풀은 그 중에서도 ‘공유경제(共有經濟) 모델’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피해자는 정부로부터 면허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플러스 섬 혁신’ 방법론이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혁신은 보장하되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안. 이재웅 대표는 “신산업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이익을 본 사람들한테는 제대로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말로 그 방법론의 일면을 제시했다. 플러스 섬은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 성과가 피해 규모보다 커야 하고, 그 과실을 피해자와 나누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그 과정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보상금과 세금을 관리할 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설계하는 일만해도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법제도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보다 이런 일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게 좋은 정부가 할 역할이다. 이 대표는 카풀 문제를 넘어 10여년 뒤에 올 가능성이 높은 ‘자율주행 택시’ 문제도 언급했다. 이 사안은 카풀보다 파괴력이 훨씬 더 클 거다.

#혁신성장은 사실 ‘속도의 전쟁’이다. 규제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자유 시장일 때만 해당된다. 규제를 푼다 해서 다수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는 분야, 그리고 시장 경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야로 제한돼야 한다. 규제를 풀 경우 다수가 심각하게 피해를 볼 게 뻔하다면 달리 생각해야 한다. 속도조절을 해야 하고, 부분적이고 순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속도조절이 필요한 까닭은 피해자 보상대책을 마련할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속도조절은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사업내용의 범위와 서비스 지역. 제일 간단한 방법은 특정 지역에 시범 적용하는 것이다. 보상이 비교적 쉽고 환경영향평가를 실증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범 사업을 통해 환경영향을 평가할 수 있다면 전국 규모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사업내용의 범위를 조절하는 건 지역 조정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다. 규제당국이 서비스를 분할할 눈과 지혜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카풀 사업 주체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와 조화를 이뤄내며 ICT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카오 택시 호출 서비스는 택시 기사와 소비자 그리고 정부 당국에 모두 칭송받는 훌륭한 ICT 혁신 서비스였다.

#대표적 공유경제로서 카풀도 그렇게 출발할 수 있었다. 카풀을, 초법적, 그러므로 택시 종사자들과 극단적 갈등이 불가피한 비즈니스 모델보다, 카풀 실수요자를 매칭시키는 빅데이터 정보 서비스로 먼저 실험하고 확대시키는 전략을 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야 말로 본래적 의미의 공유경제 가치다. 빅데이터와 AI 등의 ICT 기술로 ‘협력 소비’를 늘리고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는 상생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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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기업이 아니라 시가총액 10조원에 육박하고 삼성보다 많은 계열사를 보유한 ICT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할 때 그 점이 아쉽다. 사회적으로 유익한 ICT 기술 혁신은 늘 생계에 내몰린 자들의 영업권을 기술의 힘으로 빼앗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렸고 그것 때문에 더 이상 혁신할 마음도 자세도 안 된 대기업을 겨냥할 때 빛난다. 카카오는 SK텔레콤을 그렇게 공격했었다.

#모든 경제는 결국 정글과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한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면 이 글은 헛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기술의 존재 이유가 결국 인간의 행복에 복무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고, 그 일을 하는 사업가들을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이 사회의 풍토여야 한다고 인정한다면, 우린 카풀과 공유경제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