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는 왜 카카오를 기습공격했을까

[이균성 칼럼] 혁신 프레임 전환 전략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06 08:29    수정: 2018/11/16 11:09

#SK텔레콤이 티맵 택시를 10% 할인키로 한 것은 카카오를 향한 기습적인 역공이다. 단지 가격을 내린 마케팅 공세 때문만이 아니다. 카카오의 아킬레스건을 포착하고 모빌리티 분야에서 싸움의 판을 바꿔보려는 시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ICT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전쟁의 프레임을 바꾸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번 조치의 관전 포인트다.

#ICT 산업은 독특하다. 고유 영역이 있다. 통신 서비스나 각종 기기 그리고 SW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ICT는 고유 산업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다른 산업과 결합될 때 더 빛을 발한다. 다른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구조 혁신에 도움을 줄 때 ICT의 쓸 모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ICT는 그래서 융합(融合)을 빼고 논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융합은 ICT 산업이 가야 할 길이고 거의 숙명에 가깝다.

#ICT 융합에는 두 가지가 있다. ‘ICT 주도형 융합’과 ‘ICT 보조형 융합’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ICT 융합은 후자(後者)의 형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나 IBM 그리고 오라클과 SAP 등 전통적인 IT 기업들이 해왔던 방식이다. 다른 산업(ICT 산업과 대별되는 의미로 전통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을 혁신하는데 ICT 솔루션과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ICT 기업과 전통산업이 상생하는 관계다.

6만 명에 달하는 택시 운전자들이 18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카풀앱 반대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다.

#‘ICT 주도형 융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아마존일 것이다. 아마존은 최근 클라우드 사업을 통해 ‘ICT 보조형 융합’ 사업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지만, 출발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기업을 돕는 데 ICT를 활용하기보다는 ICT를 기반으로 다른 영역에 집적 뛰어들었다. ICT와 유통의 융합이되 타사의 유통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자사 ICT 강점을 바탕으로 유통과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여기서 눈 여겨 볼 대목이 있다. ‘ICT 보조형 융합’은 상생 모델이기 때문에 애초에 갈등 자체가 없으나, ‘ICT 주도형 융합’은 충돌 모델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이다. ‘ICT 주도형 융합’도 유통의 아마존 사례처럼 완전 자율 경쟁시장에서라면 갈등이 사회문제로 비화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진입(進入)을 규제하는 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사회문제로 비화한다.

#규제의 역설 때문이다. 규제는 반드시 기득권을 낳는다. 진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은 통상 폐해로 여겨진다. 시장 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때론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하다. ‘ICT 주도형 융합’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파고드는 게 이 지점이다. 따라서 우호적인 반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그 사례다. 금융권의 ‘부유한 기득권’에 박수를 보낼 사람은 썩 많지 않은 것이다.

#카카오는 여기서 용기를 얻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로 히트를 쳐본 경험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정부는 규제혁신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택시 호출 서비스 카카오T에 이어 카풀로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한 주요 배경들이다. 문제는 규제가 낳은 기득권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택시의 경우 금융과 달리 근로자 월평균 소득에도 훨씬 못 미치는 서민 중의 서민이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택시는 금융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금융은 극소수 부유한 기득권자의 로비만 외면하면 되지만 택시는 상당수 서민의 생계 문제기 때문이다. 기득권이긴 하지만 서민 골목상권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에게 두 번 뒷덜미를 잡힌 SK텔레콤이 파고든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서민의 일자리를 뺏는 기업’ 對 ‘ICT로 그 일자리 효율을 높이는 기업’. SKT가 짜고 싶은 경쟁 프레임이다.

#더구나 카카오에 대한 택시의 배신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카카오도 처음엔 ICT로 택시 일자리를 효율화하는데 집중했었다. 기존 택시 호출 서비스보다 더 좋은 기술을 더 싸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는 완전 자유경쟁 시장이어서 진출입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문제는 카카오가 택시 면허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는 비즈니스 모델, ‘영업용 카풀’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한다.

#SKT로서는 당분간 꽃놀이패를 들게 된 셈이다. 택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안을 것이며, 카카오 등의 노력으로 설사 ‘영업용 카풀’ 제도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나쁠 게 없다. 사회제도가 그렇게 바뀌면 사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택시의 지지 속에 호출 서비스에서 카카오T를 추격할 호기를 맞게 됐다는 점이다. 이 호기에서 실리를 얼마나 챙기느냐는 문제는 또다른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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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풀 논란에서 보듯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다른 분야와의 ‘충돌’과 ‘상생’ 사이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ICT가 가지는 ‘파괴’라는 속성 때문이다. ICT는 기본적으로 옛 것을 파괴해야 가치를 지닌다. 옛 것의 파괴는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과 같은 말이다. 문제는 누구의 옛 것을 파괴하느냐와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누가 이득을 보느냐다. 이때 충돌과 상생이 엇갈린다.

#정부와 국회가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는 아이템별로 ‘규제의 사회적 가치’와 ‘시장 경쟁의 효율성’ 사이에서 양단간의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을 찾는 거다. 그중 하나는 아마도 ‘기득권의 실질적인 내용’일 수 있겠다. 어떤 아이템이 안전과 보편적 서비스보다 기득권 챙기는 데에만 매몰되고 있다면 규제의 사회적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