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영업이익 얼마면 적당하겠습니까

[이균성 칼럼] 노웅래 의원님께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01 14:24    수정: 2018/11/16 11:10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 모양입니다. 날이 차갑습니다. 경제가 쉽지 않아서 그런지 날씨 또한 더 빠르고 깊게 얼어갈 듯합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신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혜안을 내놓기 위해 누구 못지않게 고심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 의원님께 공개편지를 쓰는 까닭은 제가 여쭙는 이 질문이 사회적으로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모적인 논란을 빨리 정리하고 미래를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편리함을 줬지만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간 스마트폰.

의원님은 지난달 31일 소비자 단체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한 정책과제 8개를 제안했습니다. 그걸 다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이 논의됐던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게 있다면 선택약정할인율을 25%에서 다시 30%로 올리자는 내용입니다. 25%로 올린 게 1년 밖에 안 됐지만요.

그런데 그 세세한 내용보다 더 중요하지만 우리가 외면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법(法)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 말입니다.

특정 시장의 상품 요금을 내리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이렇게 집요하게 입법 활동을 하는 건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가계통신비 1만1천원 인하’라는 대통령 공약을 실현하려고 시장 논리는 외면한 채 온갖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만들 수 있는 법은 다 만들어보자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국민인 소비자가 원한다”는 건 십분 이해하겠으나 지금 방식이라면 과연 법철학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권력 있고 다수가 원하면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게 과연 법일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국민 다수가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걸 강제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그러지는 못할 겁니다. 법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법(法)은 아마도 이해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그 조정을 가장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또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이해관계도 달라지기 때문에 법 또한 그에 따라 변해야겠지요. 시대변화에 맞춰 없는 법은 새로 만들어야 하고, 있는 법도 변한 세상에 맞게 고쳐야겠지요.

의원님도 동의하시겠지만, 법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려면 그래서 ‘변화’라는 논거와 ‘합의’라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가계통신비 1만1천원 인하 공약’이 ‘변화의 논거’가 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갑니다. 물론 합의라는 절차 또한 이곳저곳에서 허점이 많아 보이기도 하구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한테 중요한 것은 시대 변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변화를 제대로 아는 게 입법의 전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과 위원장께서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야겠지요. 위원장님께서 정부 여당과 달리 블록체인 발전과 암호화폐 공개(ICO)와 관련해 선도적인 입장인 것은 그런 점에서 존경하는 바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바로 그런 것이겠지요. 새로운 모빌리티 세상이 열리고 있는데 기존 운송법은 적절한지, 원격 의료와 관련된 기술 조건이 이미 충족돼 있는데 기존 의료법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국내외 기업 사이 인터넷 역차별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현행 법제도에 어떤 문제는 없는지... 대충 따져 봐도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도 아시겠지만 지난 19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을 둘러싼 여야 정쟁에 매몰돼 이 중요한 과제들은 모두 낮잠을 자야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20대는 오직 가계통신비 하나에 매몰되는 것 같습니다.

‘가계통신비 1만1천원 인하’는 '국민총생산(GDP) 3%'와 같이 정부의 정책 목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법제도를 바꿔야만 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제도 개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나온 가계통신비 관련 법제도가 비난을 받아왔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1만1천원과 관련된 현실을 말해볼까요.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포화상태니 5천500만 명이라 치고 이들에게 매달 1만1천원을 깎아주려면 산술적으로 연간 7조2천600억 원이 필요합니다. 이 돈을 마련해야 공약 실현이 가능하게 되는 거지요. 돈은 당연히 사업자에게서 나와야 할 겁니다. 재원은 두 가지겠지요. 이익과 비용을 줄여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7년 통신 3사 영업이익 합은 약 4조원입니다. 이동통신 분야만 따지면 3조5천억원 안팎일 겁니다. 유통비용은 7조원이라고 합니다. 이중 4조원은 보조금으로 소비자에게 지급되고 유통망 유지비용은 약 3조원이라는군요. 4조원이야 어차피 소비자한테 가는 돈이니 여기서 마련할 수 있는 돈은 6조5천억 원 정도네요.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을 제로로 만들고 약 2만여 개에 달하는 유통망을 깡그리 없애고도 7조2천600억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뭘 더 줄일까요. 이통사 직원과 월급을 줄이고 통신장비를 아주 싼 걸로 살까요.

이 수치에 약간의 오류는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1만1천원은 그만큼 공허한 숫자인 셈입니다.

그 공허한 숫자를 위해 우리 모두가 절대 끝날 수 없는 씨름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논리를 단순화하면, 통신비를 낮추라는 건, 통신사 영업이익이 많다는 뜻인데, 그래서 얼마로 줄이면 적당할까요. 과연 이 질문에 책임 있는 답변이 가능할까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공허한 숫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존경하는 의원님. 지금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거세게 밀려오는데 우리 경제 산업 구조는 여전히 ‘앙시앙 레짐’에 빠져 있습니다. 경제와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데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낡았지만 아직도 거대한 기득권과 새로운 경제 세력이 상생하고 조화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위에 열거한 몇 개의 사례들이 그것들 중 하나겠지요. 특히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작업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역할이 막중합니다.

공허한 숫자와 공명심에 눈길을 돌릴 때가 아닙니다.

바쁘신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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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 건강 잘 보살피시기 바랍니다.

*추신:제가 일방적으로 공개편지를 올린만큼 혹시 의원님께서 다른 의견을 공개편지로 보내실 의향이 있다면 우리 매체에 같은 크기로 게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