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거래소 탈출 러시..."규제 때문에"

"몸집 키우려면 한국 벗어나야" 위기감 핑배

컴퓨팅입력 :2018/10/26 17:42    수정: 2018/10/30 19:40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줄줄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한국에선 보이지 않는 규제 때문에 규모를 키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외국인 거래가 금지됐고, 국내 신규 가입자에 대한 실명 인증 계좌 발급도 여전 제한적이다. 업비트는 1년째 신규 가입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거래소들도 은행과 재계약 시 신규 발급이 중단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다. 또 해외송금도 막혀 있어, 한국 법인을 통해 정상적인 글로벌 사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뿐 아니다. 암호화폐 거래소업이 벤처업종에서 제외된 부분도 악재로 작용했다. 정부가 거래소를 도박장과 같이 취급하는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좌절감이 커지면서 '한국탈출' 러시를 부추기고 있다.

글로벌 거래소 만들려면 한국 벗어나야 하는 현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빗썸, 업비트, 코인원이 글로벌 규모의 사업을 펼치기 위해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빗썸, 업비트, 코인원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섰다.

빗썸은 홍콩 소재 자회사 BGEX를 통해 최근 탈중앙화 거래소 '빗썸덱스' 오픈했다. 빗썸은 이외에도 10개국에 직접 거래소를 만들 계획이다. 싱가포르 거래소 설립을 위한 등록도 진행중이다. 또 영국, 태국, 일본 등에 법인을 설립하고 거래소 사업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업비트도 싱가포르 거래소 시장에 진출한다. 현재 사전 가입자를 대상으로 고객정보확인(KYC)을 진행 중으로, 오픈이 임박했다. 업비트 역시 싱가포르뿐 아니라 거래서 사업이 허용되는 국가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코인원은 지난 8월 인도네시아 거래소를 설립한 데 이어, 이달 29일 몰타 자회사를 통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거래소 'CGEX'를 연다.

해외 거래소 설립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사업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에선 국경에 갇혀 있다는 게 진짜 이유란 해석이 많다.

올 1월 이후 이어진 보이지 않는 규제...'규칙 따르는 거래소 오히려 역차별'

지난 해 12월 암호화폐 투기과열을 막기위해 비거주자(외국인) 계좌 개설 및 거래를 금지했다. 또, 내국인의 경우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 도입에 따라 실명계좌가 필요한데, 은행들이 여전히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신규 실명 계좌 발급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업비트의 경우 기업은행에서 거의 1년 동안 신규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빗썸은 NH농협과 서비스 재계약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지난 8월 한달 간 신규 계좌 발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암호화폐 시장 자체가 주춤하면서 거래량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든 데다가, 한국에서 신규 가입자를 확보할 방법도 제한적이다.

뿐만아니라 시중 은행들이 불법 자금 이동 등을 이유로 암호화폐 거래소의 해외 송금을 막고 있는 것도, 한국에서 사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 법인으로는 해외 기업과 정상적인 사업 협력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또,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이기도 하다.

업비트 이석우 대표는 최근 개최한 개발자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규계좌 문제가 너무 오랫동안 해결이 안 되고 있어 힘들다"며 "연초에 거래량이 많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싱가포르 거래소 진출에 대해선 "암호화폐 거래소는 태생적으로 글로벌 모델이라 해외 사업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정부가 해외 나가서 열심히 하라고 지원해주면 좋은데 해외 송금을 막고 있어서 해외 진출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규칙을 잘 따르려고 하는 업체는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더 여려워지고, 오히려 군소 거래소, 해외 거래소는 정부 방침에 개의치 않고 영업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해보려는 업체들이 '역차별'을 겪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기업 업종에서 제외했다. 기존 벤처기업 제외 업종은 유흥주점업, 무도장, 사행시설 등 5가지였다. 업계는 이번 조치에 대해 "지난 1월 암호화폐 투자를 도박으로 규정한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발언에서 조금도 정부 인식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전하진 자율규제위원장은 "중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못하게 하니까 전세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그것도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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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암호화폐 산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고사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최근 블록체인 협회는 KAIST 이병태 교수에 의뢰해 블록체인 산업에 정부 규제가 없으면 5년 안에 17만5천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