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5회2사 강판"…빅데이터의 족집게 예언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AI의 힘과 한계

데스크 칼럼입력 :2018/10/25 14:24    수정: 2018/10/26 10: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A: “5회 1사까지 무실점 호투. 하지만 주자 2, 3루 상태에서 강판. 페드로 바에즈가 올라오지만 JD마르티네즈에게 안타를 맞으면서 2실점.”

B: “5회 2사까지 1실점 호투. 2사 주자 만루에서 강판. 이어 던진 투수가 볼넷으로 1실점. 이어서 JD마르티네즈에게 2타점 적시타를 또 맞다.”

A는 경기전 예상입니다. 그리고 B는 실제 경기 상황입니다. 제법 비슷하지 않나요? 두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LA다저스 선발 투수 류현진 선수입니다.

류현진 선수는 24일(현지시간)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LA다저스 선발 투수로 출장했습니다. ‘코리안 몬스터’가 메이저리그 최강팀을 상대로 어떤 기록을 남길 지 꽤 궁금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한 류현진 선수가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5회 2사 만루에서 강판됐다. (사진=뉴스1)

경기 전 흥미로운 기사를 봤습니다. 스트랫 오 메틱(Strat O Matic)이 선수들의 기록을 토대로 1만회 가량 시뮬레이션 한 결과 류현진 선수가 5회 1사까지 호투하다가 물러난다는 예상이 나왔다는 기사입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판타지 스포츠로 유명한 업체죠. 각종 기록을 토대로 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업체입니다.

■ 생각보다 정확했던 예측, 과연 우연일까

그런데 실제 경기 상황이 너무나 유사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날 류현진 선수는 5회 2사 상황에서 물러났습니다. 뒤이어 등판한 투수가 JD 마르니테즈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맞는 것도 똑 같았구요.

그 뿐 아닙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LA다저스가 맷 캠프의 내야 땅볼로 첫 타점을 올리는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LA다저스에 첫 점수를 안겨준 선수는 맷 캠프였습니다. 4회 노아웃 만루 상황에서 외야 희생 플라이를 쳤습니다. 이후 야시엘 푸이그가 중전 안타로 2루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2대 1 역전에 성공했구요.

스트랫 오 메틱은 1차전도 비교적 정확하게 맞췄습니다. 보스턴이 6대 0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지요. LA 다저스 선발 투수 클레이튼 커쇼는 2이닝 4실점으로 물러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실제론 4이닝 5실점이었습니다.

물론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1차전 때 보스턴 선발 투수 크리스 세일이 눈부신 호투를 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첫 다섯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기세를 올린 끝에 탈삼진 19개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세일 역시 4이닝을 겨우 채우고 물러났습니다.

스트랫 오 메틱의 판타지 야구게임 화면. (사진=스트랫 오 메틱)

요즘을 빅데이터 시대라고 합니다. 데이터가 경쟁력의 원천인 시대죠.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역시 마지막 승부는 ‘데이터’에서 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전망입니다. 중국의 약진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클랜드 팀을 소재로 한 영화 ‘머니볼’ 이후 웬만한 야구팬들은 세이브 메트릭스란 말을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비리그 MBA 출신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메이저리그 팀들의 단장에 취임하는 것도 자연스런 풍경이 됐습니다.

빅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도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한 수비 시프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데이터 및 통계 전문 전문가와 야구 인력들이 공존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보스턴, 시카고 두 팀에서 밤비노의 저주와 염소의 저주를 끊어낸 테오 엡스타인이 21세기 야구판의 새로운 인재상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제가 스트랫 오 메틱의 류현진 선수 경기 결과 예측에 유독 관심을 가진 건 이런 시대 변화 때문입니다. AI와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차세대 기술들이 전통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말입니다.

물론 전 스트랫 오 메틱이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예측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짐작해볼 순 있습니다. 선수들의 각종 기록과 상황 변화 같은 것들을 곰곰히 따졌을 테지요. 볼 구질부터 스트라이크 비율, 구속 같은 여러 변수들을 전부 고려했을 겁니다. 그렇게 1만 번을 돌려봤을 때 가장 확률이 높은 쪽을 택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 모든 건 변수 많은 확률게임…그래서 더 두려운 빅데이터 분석

1961년 설립된 스트랫 오 메틱은 야구 뿐 아니라 인기 스포츠 판타지 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판타지는 현실에 환상을 잘 결합해야만 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합니다. 스트랫 오 메틱은 그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스포츠든 바둑이든 결국은 확률 게임입니다. 가장 승률이 높은 선택을 하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지요. 스트랫 오 메틱의 분석모델이 스포츠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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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예측은 재미로 보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선 컴퓨터의 예측 능력이 수 많은 ‘야구 전문가’들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 십 년 해 온 야구 방식만 고집하면 시대 변화에 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AI(로 대표되는 분석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야구만 그런 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저널리즘 영역에서조차, 이미 그런 시대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전통 저널리즘’만 고수하다간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 IT 기자인 제가 야구 경기에 흥분해서 긴 글을 쓴 건 오히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