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팔이’는 사회적인 기생충이 아니다

[이균성 칼럼] 자급제...오해와 편견

데스크 칼럼입력 :2018/10/23 16:41    수정: 2018/11/16 11:12

#‘폰팔이’는 휴대폰과 이동전화 서비스를 판매하는 매장 종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직업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말이지만, 사전에도 없는 이 무서운 용어 외에, 이들을 부르는 정상적인 어휘가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생충처럼 여겨지고 있다. 단지 직업인이고 보통사람일 뿐인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모욕과 저주가 온라인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나 도둑이 아니다. 범죄자가 아니다. 경제 규모와 시장 현실로 볼 때 다소 숫자가 많은 측면이 있고, 다수의 위법사례가 발견되고 있긴 하다. 이런 상황은 이 시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소비자 다수는 이들을 기생충으로 생각하는 듯 하고, 이에 편승한 정치인은 이들의 직장을 일거에 쓸어버릴 법을 준비 중이다. 무서울 만큼 잔인한 사회적 편견이 비수와 같다.

#백보를 물러서서 이들이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구조조정 대상이라 치자. 좋은 사회라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이들에게 전업 기회를 먼저 줄 것이다. 그게 사회적 연대이고, 그걸 확인하면서 우리는 이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여길 거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 소수를 보듬어 살 수 있게 해줘야한다. 그러지 않고 없애버리려 한다면 너무 무섭지 않은가.

갤럭시노트9 자급제 모델 판매 페이지(출처=티몬)

#최근의 휴대폰 완전자급제 논의가 그렇다. 긴급한 목표만 있지 필요한 과정이 무시되면서 이 법 추진 방향이 이들에겐 생계를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버렸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서비스 사업자나 단말 제조업체가 조금 더 ‘본원적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가계통신비 인하는 그 부산물일 뿐이다. 지나치게 부산물에 집착하면 본래 취지가 왜곡되고 입법이 살인적일 수 있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오랫동안 불법으로 얼룩져왔다.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사이에 가입자 빼앗기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과당 경쟁이 늘 도마 위에 올랐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많은 법을 만들어왔다. 사업자는 법을 지키는 것보다 가입자를 획득하는 게 더 이익이었으므로 밥 먹듯 법을 위반했다. 과징금과 과태료가 주기적으로 부과됐지만 시장은 사실상 무법천지였다.

#위법의 핵심은 불법보조금이었다. 가입자를 빼앗기 위해 특정 소비자에게 단말기 값을 법이 정한 규모 이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공짜폰’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발품 손품을 팔면 단말기를 거의 공짜로 구매할 수 있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소비자가 차별받는다는 점이 첫째다. 과당 경쟁으로 인한 고비용 유통 구조 탓에 전체 서비스나 단말기 가격이 비싸게 책정된다는 점이 두 번째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왔다. 소비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보조금을 공시토록 했다. 공시된 만큼 누구나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신 금액이 줄었다. 또 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요금을 깎아주도록 했다. 선택약정할인이다. 이 할인율은 계속 높아져 지금은 25%다. 소비자 차별은 사실상 없어졌고, 선택약정할인으로 요금도 조금 줄어들었다.

#이 법은 그러나 상당수 소비자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됐다. ‘공짜폰’을 받을 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어진 것과 모두의 요금이 조금씩 줄어든 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거의 공짜로 살 수 있었던 폰을 제 가격 다 주고 사야 하는 현실만 더 크게 느껴진 것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가계통신비 인하 문제는 대통령 공약이 될 정도였다. 통신비 인하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계통신비 인하 폭이 클 수 없다는 데 있다. 대통령 공약은 월 1만1천 원인데 그렇게 되면 이통 3사는 바로 3~4조원 대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월 5~6천원이면 마진 없는 회사가 된다. 그러나 그 정도 인하로는 소비자 마음을 달래줄 수가 없다. 그러니 누군가 마녀가 필요하다. 쓸 모 없이 고비용 구조 속에 있는 자. 폰팔이다. 폰팔이를 다 없애면 월 1만1천원이 가능해진다.

#법안 기획자들이 착각하는 게 이 대목이다. 진짜 마녀는 불법보조금인데 폰팔이를 마녀로 본다. 본원적 경쟁을 해치는 것도,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도,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도 보조금이 원인이다. 서비스 회사의 보조금 집행을 원천 차단하고, 위반할 때 과징금을 징벌적으로 올리는 게 중요하다. 자급제의 진짜 취지는 보조금을 없애는 것이다. 이통사 보조금과 단말 판매의 결합을 막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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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은 과잉 입법이다. 한 매장에서 서비스와 단말을 함께 파는 것을 왜 금지해야 하는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는 팔지 말라는 법이 가능하겠는가. 소비자한테는 그게 훨씬 편한데. 개통업무 재위탁도 막을 일이 아니다. 유통은 한 단계만 필요하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 문제는 유통시장을 교란하는 보조금이다. 그걸 막자는 게 자급제의 본래 취지이지 폰팔이 죽이는 게 목적이 될 순 없다.

#지금 발의되고 있는 완전자급제 관련 법안 모두에서는 아예 보조금이 존재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단말을 판매할 수 없는데 어떻게 보조금을 주겠는가. 지금까지는 시장 분위기 탓에 보조금을 없애자는 주장마저 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공시가 대안이었다. 보조금 금지만으로도 시장에 주는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는 뜻이다. 법은 거기까지면 족하다. 나머지는 시장에 맡기는 게 더 순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