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망 사업, 어떻게 15년간 표류했었나

통합지휘무선망으로 시작해 재난안전통신망이 되기까지

방송/통신입력 :2018/10/18 10:37

감사원에 의해 2002년 6월 처음 필요성이 제기된 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이 15년 이상 흐르고서야 구축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을 계기로 제시된 재난망은 이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겪을 동안 끝내 구축되지 못하다가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17일 정부는 재난망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라장터에 공고했다. 선정 결과 KT가 A·B사업, SK텔레콤이 C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행정안전부가 구축하려는 재난망은 전국 규모의 광대역 공공 안전 통신망이다. 경찰, 소방, 해경 등 재난관리 담당자들이 업무에 사용하는 전용 무선통신망인 셈이다.

재난망의 시초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명칭은 통합지휘무선망이었다. 감사원은 2002년 6월에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을 예로 들어 재난 시 통합지휘무선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진=pixabay)

■ 2002~2007년: 삐걱거리는 통합지휘무선망 사업

감사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통합지휘무선망의 필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행정자치부 국가재난관리시스템기획단은 2003년 8월 '국가재난관리종합대책안'을 마련했다.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월 기본계획안을 수립했고 마침내 12월에 국가재난무선통신망에 적용될 기술이 테트라로 최종 확정됐다.

기술이 확정됐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다음 해인 2004년 정부조직개편으로 주무부처가 행정자치부에서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변경되면서 예산 확보, 기술 표준화에 따른 장비·단말기 국산화 문제, 주파수대역, 통합망 포함기관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단말기 보급 문제로 2010년에나 완료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당시 기획예산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행하고 9월 3천600억원의 예산안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11월 기획예산처는 다음해 재난대응종합 지휘 무선통신망에 55억원을 지원했다.

2005년 4월 소방방재청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사업에 3천354억을 투입했다. 정보통신부는 800MHz대역에서 주파수를 확정했다. 그러나 참여 민간기업들 간 기득권 싸움과 표준화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마침내 9월에는 당초 예상한 3천400억원의 세 배가 넘는 1조원이 필요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통합망 사업을 특정업체가 독점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추진 중인 시범사업을 중단하고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2006년 5월에 정부는 수도권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해 8월 완료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소방방재청이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업체간 경쟁을 차단하고 특정 업체의 독점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2007년에 정부는 본사업 장비 업체로 모토로라를 선정했다. 그러나 사업은 2천109억원의 예산을 배정받고도 여전히 망 사용 문제와 예산 확보 문제, 업체 간 이해관계로 표류했다. 당시에도 이미 여러 매체는 통합망 사업이 4년간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11년 전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통합망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 2008~2013년: 통합지휘무선통신망에서 재난안전통신망으로

2008년 2월 감사원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구축 실태와 관련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모토로라와 국내 딜러 업체가 통합망 시범사업 등 3개 사업을 낙찰받아 사실상 장비를 독점공급하면서 부당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8월 기획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국가통합망 타당성 재조사를 의뢰했다.

이듬해인 2009년 8월 KDI는 예비타당성 재조사 결과 통합지휘무선망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정 업체 독점 문제는 기술 공개와 표준화, 국산화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비용 대비 효과가 장기적으로 너무 적다는 이유였다. 사업은 백지화되는 듯 했으나 11월 소방방재청에서 행정안전부로 주무부처가 이관됐다. 행안부는 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2010년에는 테트라 대신 국산 기술인 와이브로를 표준 규격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떠올랐다. 표준 규격에 대한 의견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행안부는 구축을 2011년 말까지 연기했다.

2011년 3월 행정안전부는 사업 이름을 재난안전무선통신망으로 바꾸고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국감에서 행정안전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졸속추진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자가망을 구축할지 통신사의 상용망을 이용할지도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2012년 6월 안전행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뢰했고 이듬해 1월 재난망이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으로 선정됐다.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당초 2013년 6월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계속해서 미뤄졌다. 결국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와 KDI가 이견을 보여 조사마저 불투명해졌다.

■ 2014~2018년: 세월호 이후 평창올림픽까지

지지부진하던 재난망 사업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급물살을 탔다. 2014년 5월19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의 후속조치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을 2016년까지 8개 시·도를 대상으로 확산키로 했다. 주무부처 또한 안전행정부에서 미래부로 옮겨졌다. 그해 7월 재난망 구축방식은 700Mhz대역에서 PS-LTE 기술을 사용해서 자가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PS-LTE는 일반 LTE 기술에 그룹통화, 단말기간 직접통신(D2D) 기능을 추가한 기술이다. 그러나 당시 700MHz 사용을 놓고 방송업계와 통신업계가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재난망 구축은 또 미뤄졌다.

2015년 2월 재난망 준비가 끝나고 정부는 강원도에 470억원 규모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10월에 KT와 SKT는 재난망 1·2 시범사업을 나란히 수주했다. 마침내 11월 세계 최초로 PS-LTE 규격 국가재난망 사업이 출범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16년 6월 재난망 시범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공식적으로 완료됐다. 올해 1월까지 보강사업이 진행됐다.

이후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재난망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 7월 재난망 사전규격이 공개됐다. 8월에는 본사업이 나라장터에 공고됐다. 행정안전부는 9월부터 지난 5일까지 사업제안서 신청을 받았다.

관련기사

조달청은 2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과 사업제안서를 평가하고 결과를 18일 공개했다. 평가 결과 A사업과 B사업은 KT가, C사업은 SK텔레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기술협상과정을 거쳐 약 20일 후 본사업 계약이 체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준비해온 사업이니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추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