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없는 블록체인 전화, 가능할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관건은 확장성과 규모

데스크 칼럼입력 :2018/10/11 17:20    수정: 2019/03/19 15:0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에 전화망이 깔린 이후에도 서부 지역에선 꽤 오랫 동안 ’철조망 네트워크’가 명맥을 유지했다. 인구 밀도가 낮아 통신사들이 투자를 기피한 때문이었다. 자구책에 나선 캘리포니아 지역 목장주들은 직접 통신망을 구축했다. 목장 울타리를 둘러친 철조망을 활용한 자기들만의 통신망이었다.

철조망 네트워크에 전화기를 연결해 서로 통화를 했던 이 방식을 당시 사람들은 ‘파티 라인’이라고 불렀다. ‘파티 라인’은 1970년대까지도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로버트 터섹의 ‘증발(Vaporized)’에 나오는 얘기다.

통신사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 전화기’가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펀디엑스란 업체가 만든 ‘엑스폰’이 그 주인공이다. 블록체인망을 활용해 통화나 데이터 전송 문제를 해결하겠단 구상이다.

펀디엑스 공동 창업자인 피트 황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미디엄에 이런 사실을 공개하면서 “보통 전화와 달리 통신사가 없어도 된다”는 부분에 ‘top highlight’ 표시를 해놨다. 그게 핵심이란 얘기다. (☞ 피트 황 글 바로가기)

(사진=펀디엑스)

■ "인터넷 초기 브라우저가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른다. 통신사 없이 어떻게 통화를 할까, 란 지극히 상식적인 궁금증이다. 그래서 피트 황 CTO가 올린 글을 찬찬히 읽어봤다.

일단 기본망 역할을 하는 건 펑션엑스(Function X)란 퍼블릭 블록체인이다. 이게 완전 분산형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게 펀디엑스의 설명이다. 펑션엑스는 크게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1. 펑션엑스 운영체제(OS)

2. 펑션엑스 블록체인

3. 분산형파일시스템(IPFS)

4. FXTP(분산형 HTTP) 프로토콜

5. 펑션엑스 도커(Docker)

이중 핵심인 OS 블록체인은 안드로이드 9.0 기반으로 제작됐다. 안드로이드 앱들과 호환이 된단 얘기다. 안드로이드 폰 이용자를 흡수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펑션엑스 생태계에서 작동되는 모든 기기들은 한 개 노드 역할을 한다. 당연히 고유 주소와 프라이빗 키를 갖는다. URL과 IP 주소가 있는 인터넷과 구동 방식이 비슷하다.

피트 황은 미디엄에 올린 글에서 “내가 공개한 데이터나 콘텐츠에 접속하려면 그냥 FXTP://xxx.pitt이라고 치면 된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통화할 땐 ‘call.pitt’이라고 입력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쯤되면 조금 짐작이 된다. 인터넷과 비슷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구현하겠단 얘기다.

실제로 피트 황은 외신들과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은 1990년대 초반 인터넷과 비슷한 단계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펑션엑스 같은 분산 프로토콜은 블록체인 망에서 인터넷 초창기에 브라우저가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사진=펑션엑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의 장점은 뭘까? 외신들에 따르면 피트 황 CTO는 “데이터 통제권을 이용자들의 손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화통화는 ‘음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꼭 기존 통신방식과 연결시킬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분산망인 블록체인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교환대 역할을 하는 통신사 없이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어 보인다.

이 대목에서 또 궁금증이 뒤따른다. ‘통신사가 매개할 필요 없는 블록체인 전화’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내겐 이 질문에 답을 할 능력은 없다. 다만 참신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 지 따져볼 순 있을 것 같다.

■ 1970년대 '파티라인'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

그 얘길 하기 위해 앞에서 꺼냈던 ‘파티 라인’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캘리포니아 주의 ’파티라인’은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소셜 미디어였다. 중앙 통제자가 없는 완벽한 P2P 망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망을 이용해 뉴스를 읽어주거나, 간단한 방송을 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서비스업체가 따로 없었다는 점만 빼면 페이스북 같은 21세기 소셜 플랫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꽤 매력적이었던 ‘파티 라인’은 결국 1970년대말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장거리 전화 기능이 없었던 게 가장 컸다. 이용자들이 조금씩 이탈하면서 결국 철조망 네트워크는 해체됐다. 규모의 경제가 문제였던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1970년대까지 유행했던 파티라인. (사진=위키피디아)

과연 블록체인 전화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간단해보이진 않는다. 기존 세계가 워낙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통신망을 통해 누리는 각종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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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펀디액스는 디앱(dApp)들을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확장성은 문제 없단 설명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블록체인이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거대한 질서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려 하고 있단 점이다. 블록체인 전화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에 내가 솔깃했던 건 그 점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