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경쟁력 시대의 과학 한글

[박승정 칼럼] 이 땅의 ‘최만리들’에게

데스크 칼럼입력 :2018/10/08 16:31    수정: 2018/10/08 18:33

조선의 세종 시대에도 기득권층에게는 변화와 혁신, 새로운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한글을 예로 들어보자. 한글은 알파벳을 제외한 언어 중에서 컴퓨터 자판에서 자국어 문자를 구현할 수 있는 거의 세계 유일의 언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조명 받는다. 유네스코(UNESCO)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성리학으로 무장한 최만리를 비롯한 다수 집현전 지식인들은 상스럽고 무익한 글자를 왜 만드느냐고 극구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한글 창제는 기존의 문자 기득권 체제에 반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한자 중심의 중화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인데다 양반의 전유물인, 정보의 바다로 진입할 수 있는 열쇠인 문자를 일반 서민에게 오픈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컨대, 문자는 정보와 사상의 이동과 확산 수단이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별점 중의 하나다. 마셜 맥루언이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의 이동 및 전환의 수단으로서의 은유(meta(over)+pherein(carrying)=metaphor)다.

문자의 오픈 자체가 위협적인 이유다. 다시 말하면 사대부가 쌓아올린 중앙정부의 견고한 기득권 통제 체제를 허물 수 있는 아킬레스건과도 같다. 최만리를 비롯한 당시 기득권이 갖고 있던 지식과 정보의 독점권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최만리가 누구인가. 개인적으로도 그는 집현전 박사로 시작해 교리, 응교, 직제학을 거쳐 18년 만에 오늘날의 장관직인 부제학에 올랐던 기득권적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중국 중심의 성리학 세계관이 전부인 그다.

중국에 사대의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날의 또 다른 미국 사대주의의 맥락이다. 문자로만 보면 중앙 집권적 세계 표준어인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분권적 문자인 ‘언문’을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었다.

세종의 혜안과 결단력이 단연 돋보인다. ‘한글 창제’는 새로운 것, 이른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굉장히 위험한 도박과도 같다. 눈앞의 이익에 사대하는 사대부 기득권층과 강대국 중국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한글은 디지털 모바일시대에 세계가 인정한 가장 과학적인 문자다.

"한글 창제는 오랑캐나 하는 짓"... 이해관계 뭉친 문자 기득권주의 반발

하지만 지금의 한글은 어떠한가. 디지털 기반의 모바일 시대에 더욱 빛나는 언어다. 하늘(天)·땅(地)·사람(人)을 의미하는 세 개의 기본 모음에 조음기관을 본뜬 나머지 자음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 자판의 수를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이다.

표음 문자인 한글은 낱말과 문장을 형성하는 방식에서 알파벳보다 직관적이고 효율적이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이 훨씬 자유롭다. 영어는 같은 표음문자인데도 알파벳 26자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가 300여 가지에 불과한데 반해 한글은 이론상 자모 24자로 1만1000 가지다.

중국어를 한번 살펴보자. 한자를 자판으로 표기하려면 알파벳으로 먼저 입력하고 자동변환방식을 이용해 다시 이를 한자로 변환해야 한다. 한자어를 빌려 쓰는 일본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한글보다 28배 이상 비용이 추가돼야 한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한글은 문자구성 및 전달속력에서 영어보다 3배 빠르며, 중국어보다 8배, 일본어보다 5배나 빠른 문자작성 및 전송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글이 투입 대비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 한자병기론·영어공용화론 여전히 잠복... 우리글 갈고닦을 어문청 설립해야

한글이 신음하고 있다. 올해로 한글 창제 572돌을 맞았지만 한글의 수난사는 여전하다.

지난 1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자 병기론’의 불씨는 여전하다. 한자 병기는 학원가의 자본논리가 가세하고 있지만 근본은 역시 성리학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뿌리 깊은 문자 사대주의다. 한자가 본디 우리글이라는 ‘기원론’까지 나올 정도다.

사대주의는 근본은 이해관계다. 중국이 강국일 때는 중국에 사대하고 미국이 초강국일 때는 미국에 사대하는 길만이 살 길이다. 일본이 식민지배할 때는 서슴없이 친일했다.

영어 공용화론은 잠복 상태다. 영어가 곧 경제의 경쟁력 운운했지만 근거는 빈약했다. ‘영어마을’이 전국 지자체를 뒤흔든데 이어 이번에는 대만의 영어 공용화 주장이 자극제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영어 공용화 논란에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미 수도 서울의 주요 도로 건물 입간판은 영어에 내어 준지 오래고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신조어가 난무하고 온라인, 모바일(SNS) 혹은 세대 간 언어가 갈라지고 있다.

도(度)를 넘었다. 언어와 문자의 다양성이 인간의 생활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신문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고 방송 언어가 다르다. 어문청을 설립해 우리글을 갈고닦아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옛 이야기다.

그러나 주목할 것이 있다. 방탄소년단(BTS) 얘기다. BTS의 한류 열풍은 동남아와 남미를 거쳐 캐나다·미국·유럽·일본을 휩쓸고 있다. 중요한 것은 BTS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한다는 점이다. 영어가 경쟁력의 요소가 될지언정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보다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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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글날이다. 영어를 반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반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문자 기득권을 또 다시 추구하려 하는가. 세계가 인정한 가장 과학적인 언어인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이 땅의 ‘최만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