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도 처음엔 불법이었다

[조중혁 칼럼] 새 기술 발전위핸 '사회적 합의' 중요

전문가 칼럼입력 :2018/10/04 09:14

조중혁 IT칼럼니스트
조중혁 IT칼럼니스트

지난 주 미국 금리가 또 올랐다. 한미간 기준 금리 차이가 0.50%에서 0.75%로 확대되었다. 앞으로도 미국이 몇차례 금리 인상을 암시한만큼 금리 차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자본이 반드시 금리만을 쫓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금리가 중요한 판단 기준은 것은 확실하다.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돈이 큰 폭으로 빠져나가진 않겠지만 근심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부에서 쉽게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기형적으로 높은 가계 부채 때문이다.

우리와 사정도 다르고 금리 수준도 다르지만 우리에게 고민을 주고 있는 미국 역시도 금리 인상으로 매우 큰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오일쇼크 때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본토를 공격당하지 않고 승전국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때문에 유럽을 넘어 독보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3년 중동전쟁 발발 이후 페르시아 만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인상과 감산에 돌입해 배럴당 2.9달러였던 두바이유가 4달러가 넘는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졌다. 오일쇼크가 터져 물가가 폭발적으로 오르자, 물가를 내리기 위해서 17%라는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했다.

문제는 17%라는 금리를 감당할 수 없자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자 비용 17%를 내고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made in USA’는 세계 시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당시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통받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영국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을 정도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정책에 변화를 주었다. 미국이 선택한 전략은 기술 혁신이었다.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노골적으로 우대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디지털 혁명, 통신 혁명, 기술 혁명을 주장하며 앞으로의 세계는 글로벌, 자유시장, 정보화 시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즉, 지금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1970년대 미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돌파구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강하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며 검증된 방법은 기술혁신 밖에 없다.

1907년 라이트 형제가 선보인 세계 최초 비행기. (사진=위키피디아)

기술 혁신은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장 선 사람은 정치인들이었다.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를 대표로 하는 정치인들이 it와 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결국은 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하며 이해 집단을 설득했다. 국민이 공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기회를 잡은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Bill Gates)와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 자본주의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투자를 줄이고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이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기존 패러다임과 다른 도전을 했다.

현 정부는 혁신성장을 이야기하지만 눈에 보이 것은 없는 거 같다. 다양한 이해 집단과의 갈등으로 해외에서는 이미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있지만 우리는 시작도 못하고 있는 사업이 많다. 우버 같은 차량 공유 사업이 그러하며, 에어비엔비 같은 숙소 공유 사업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콜버스, ICO, 기름 직배송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시작도 못 해 보고 있다.

사회의 변화는 누군가의 불편함도 함께 가지고 온다. 때로는 불편함을 넘어 생존 기반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비행기 역시도 누군가의 불편함이었다. 1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여행이라는 즐거움을 선사 해 준 비행기 역시도 누군가의 불편함으로 큰 갈등이 있었다.

새처럼 날아 다니는 인간의 오래 된 꿈을 라이트 형제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자 신문사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엄청난 관심은 불가능한 일을 성공한 라이트 형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공격하기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라이트 형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뉴욕시의 허드슨-풀톤(Hudson-Fulton) 축제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돌고 뉴욕 시민들 위로 33분간 날며 그들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비행기 산업은 급속한 성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행기의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소식은 아니었다. 당시 땅을 소유한 사람들은 비행기의 발전을 매우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자신의 건물에 부딪히거나 땅에 떨어지는 것을 우려한 자산가들이 비행기의 발전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땅 주인들은 자신들이 땅 위 공간까지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땅을 지나가는 위해서는 자동차가 자신들의 허락을 받고 자신들에게 통행 요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비행기 역시도 하늘 위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허락과 함께 통행 요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행기 발명 전 만들어진 당시 법만 가지고 보면 땅 주인들의 주장이 맞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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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발전은 사회적 대타협이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자동차와 다르게 땅 주인의 허락이나 통행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협의가 있어 발전할 수 있었다. 관련 단체들과의 많은 토론이 있었고 기술 발전을 위해서 비행기는 땅주인에게 허락이 필요 없다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면서 비행기 산업이 빠르게 발전 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는 더욱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술 혁신이다. 기술혁신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만들게 되며 이를 해결하라고 만든 제도가 정치이다. 정치가 사회적 협의를 통해 과거의 법을 빨리 정돈해 앞으로 나가는 것이 지금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종혁 IT컬럼니스트

문화체육부 선정 '올해의 우수 도서'로 선정 된 ‘인터넷 진화와 뇌의 종말' 저자이다. 96년 국내 최초 인터넷 전문지였던 '월간 인터넷' 기고로 글쓰기를시작하였다. 02년 '서울시청 포털' 메인 기획자로 일을 했다. '서울시청 포탈'은 UN에서 전자정부 세계 1위로 대상을 수상해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기틀이 되었다. 미래부 '월드IT쇼' 초청 연사, 콘텐츠진흥원 심사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이동 통신사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