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동아리 멤버, AI 헬스케어 뛰어든 이유

장민홍 루닛 이사 "이미지 인식 기술 자신"

디지털경제입력 :2018/09/30 11:17    수정: 2018/09/30 11:22

우리나라 최고 과학기술 인재가 모여 있다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힙합 동아리로 시작해 지난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꼽은 세계 100대 인공지능(AI) 기업에 들어간 곳이 있다. 같은해 비주얼 컴퓨팅 기술 및 AI 분야 글로벌 기업 엔비디아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대 AI 스타트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둘 다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2015년 설립돼 국내를 넘어 세계 AI 헬스케어시장을 개척 중인 ‘루닛(Lunit)’ 얘기다. 힙합동아리에서 컴퓨터 비전 분야 스터디도 꾸려가던 백승옥 루닛 대표는 마음 맞는 선후배들과 함께 창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첫 시도로 2013년에 만든 회사 클디(CLDI)는 AI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로 원하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찾아주거나 비슷한 제품을 추천해주는 사업 모델을 밀었다. 그러나 시장성이 유망하지 않다는 문제를 만나면서 2년 뒤 의료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루닛으로 사명을 바꿨다.

장민홍 루닛 이사가 의료기기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루닛)

지난 21일 기자와 만난 장민홍 루닛 공동 창업자 겸 이사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사업이자 나중에 세계시장까지 나갈 수 있는 사업은 뭘까 고민했다”면서 “우리 모두 석·박사 연구자로 이미지 인식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에는 자신 있었다”며 AI 기반 메디컬 이미징 사업에 뛰어든 배경을 말했다.

메디컬 이미징은 X선 촬영이나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 의료기기를 이용해 신체 내부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루닛은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흉부X선 영상을 분석해 폐암 결절을 시각화하고 검출하는 기술력을 가졌다.

루닛이 자체 개발해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 의료 현장에서 쓸 수 있게 된 ‘루닛 인사이트(Lunit INSIGHT for Chest Radiography Nodule Detection)’는 의료진의 폐암 판독을 보조하는 의료영상 검출 소프트웨어다.

루닛의 기술이 주목 받는 이유는 폐암 조기 진단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진은 직접 환자의 흉부 X선 영상을 보며 폐암 결절 존재 여부나 위치 등을 판단했다. 문제는 결절 크기가 작거나 흉부 X선 영상에 같이 찍힌 심장, 늑골, 폐 혈관 등 다른 장기에 가려지면 의료진이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인해야 할 X선 영상이 많거나 의료진 숙련도가 낮은 경우에도 폐암 결절을 조기에 잡아낼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진다.

의료진은 1차로 직접 흉부 X선을 판독한 후 다시 루닛 인사이트를 이용해 폐암 결절 존재 여부를 분석해 최종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루닛은 해당 SW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병원과 임상시험한 결과 폐암 결절 검출 정확도가 최대 97%까지 높아졌음을 확인했다. 의사의 판독 정확도도 최대 20% 높아졌으며 비영상의학 전문의가 루닛 인사이트를 사용하면 흉부 영상의학 전문의 수준의 판독 정확도를 나타냈다.

장 이사는 “국내 남녀 사망률 1위인 폐암은 말기에 발견되면 생존율이 6.1%로 매우 낮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64%까지 10배 이상 생존율이 높아진다”며 “당사 기술은 의료진이 폐암 결절을 놓치지 않고 조기 진단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자사 기술력, 세계 최고 수준”

루닛은 의료영상 판독 보조를 포함한 AI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내다봤다.

장민홍 이사는 “세계적으로 의료진이 판독해야 할 의료영상 수가 늘고 있지만 의료진 수와 업무시간은 이를 따라가지 못 한다”며 “의료업계도 과거엔 AI 등 정보기술(IT)을 의료영역에서 활용하는 시도에 대해 의구심 등을 보였지만 현재는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진단 중심 기술이 많이 나오지만 치료 쪽으로 IT를 활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면서 “방사선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할 때 조사량을 얼마나 해야 할지 계산하는 분야에서도 AI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헬스케어 시장 내 밸류체인이 다양해지고 있다. AI 헬스케어 시장은 반드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성이 기대되는 만큼 루닛 인사이트 경쟁 제품들이 이미 시장에 나왔거나 개발 중이지만 루닛은 자사 이미지 인식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루닛은 세계적인 의료영상기술학회(MICCAI) 2016에서 열린 유방암 종양 확산 스코어 자동 판독 알고리즘 대회에서 IBM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국제림프절전이검출대회(CAMELYON) 2017에선 하버드 의대보다 높은 스코어로 1위를 기록했다.

기술 논문, 초록 발표도 활발하다. 올해에만 세계에서 가장 큰 영상의학회인 북미영상의학회(RSNA)에서 초록 6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컴퓨터비전학회(CVPR) 2018에 논문을 발표했고, 세계 최고 권위 국제학술대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 국제학회(NIPS) 2018에서도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AI 연구 인력이 풍부한 점도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임직원 50명 중 연구 개발 인력만 25명이다. 풀타임 전문의도 6명으로 제품 개발 과정에서 의학적 견해를 활발히 제공하여 의사가 원하는 제품을 사용하도록 돕는다.

장 이사는 “현재 국내보다 해외에 루닛 인사이트와 유사한 제품들이 많은데 알고리즘 우수성에서는 자신 있다”며 “딥러닝 장벽이 낮아져 과거보다 쉽게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의료영역이 요구하는 수준의 정확도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 현장에서 쓰이려면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당사는 기술 논문, 초록을 활발하게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신뢰성을 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지 1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루닛 인사이트에 대한 반응도 좋다. 장 이사는 “서울대학교병원은 루닛 인사이트 도입을 확정했으며 폐암 진단 정확도 상승 외에도 업무 효율성 향상 효과도 예상해 임상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검진센터, 종합병원, 내과, 이비인후과 등에서 구매의사를 보이고 있다. 학회나 전시회 등에서 루닛 인사이트 데모를 보고 난 후 필요성을 느끼는 의료진들도 많다”고 말했다.

루닛 인사이트(Lunit INSIGHT for Chest Radiography Nodule Detection)가 분석한 폐암 결절 위치.(사진=루닛)

■ 내년말 해외 의료기기 허가 사례 기대

루닛은 폐암 외에도 유방암 진단을 보조하는 루닛 인사이트(Lunit INSIGHT for Mammography)도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201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이 동시 진행된다.

루닛은 분석할 수 있는 질환 범위를 늘리는 것 외에도 분석할 수 있는 영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술도 개발 중이다. 첫 번째 루닛 인사이트는 X선 영상을 분석할 수 있으므로 이후 제품은 CT, MRI 분석할 수 있게 개발하는 것이다. 이밖에 임상병리 영역에서 치료 반응 등을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한다는 포부다.

장 이사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유방암은 여성암 사망 원인 1위”라며 “유방조직 밀도가 높은 아시아 여성은 특히 유방암 위험도가 높다”며 “유방암 판독을 위한 루닛 인사이트가 나온다면 세계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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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닛은 헬스케어가 세계적 화두라는 점에서 해외시장으로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폐암과 유방암 대상 루닛 인사이트 모두 해외서 의료기기 허가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며 유방암 대상 루닛 인사이트는 이르면 내년 말쯤 받는 것이 목표다.

장 이사는 “헬스케어 사업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 세계로 나가야 한다”면서 “아직 시장이 초기 상태라 세계 AI 헬스케어 기업들이 매출보다 투자 비중이 더 큰 편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분명 유의미한 매출을 낸는 기업이 나올 것”이라며 루닛 역시 이같은 기업 중 하나가 되겠다는 자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