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년 전통 언론사, 블록체인에 손 내민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AP와 시빌의 예사롭지 않은 제휴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29 16:37    수정: 2018/08/29 17:0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블록체인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암호화폐와 동의어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다. 암호화폐 거품 논란이 일 때마다 블록체인까지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인터넷 못지 않은 혁신적인 기술이다. 일종의 분산원장인 블록체인은 거대한 평판 시스템 역할까지 할 수도 있다.

그런만큼 쓰임새도 넓다. 식품부터 보석까지 많은 물품들의 유통 추적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위조품 적발이나 신선도 확인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미국 대표 뉴스 통신사인 AP가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 시빌과 손을 잡았다. (사진=AP)

여기 172년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사가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전통 미디어들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가 된 이후엔 일반 독자들도 많이 읽고 있다.

또 한 켠엔 출범한지 2년 된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가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과 코인을 접목해 저널리즘 혁신을 꿈꾸고 있다.

저널리즘 현장의 전통과 혁신을 대표하는 두 미디어가 전격 손을 잡았다. 미국 뉴스 통신사 AP와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시빌(Civil) 얘기다.

■ 콘텐츠 무단 도용-가짜뉴스 고민 해결 실마리 찾을까

AP는 미국을 대표하는 뉴스 통신사다. 남북전쟁 당시 여러 신문들이 공동으로 만든 AP는 역피라미드형 글쓰기와 객관보도란 새로운 보도 기법을 한 발 앞서 도입한 조직이다. 전통 저널리즘의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시빌은 지난 해 7월 출범한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뉴스 플랫폼이다. 출범 직후인 지난 해 10월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컨센시스로부터 500만 달러 투자를 받으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올 들어 CVL 토큰 발행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시빌 스튜디오(Civil Studios)를 비롯한 14개 뉴스룸을 출범시켰다.

언뜻 보면 둘의 조합은 어색하다. 케케묵은 저널리즘과 팔팔한 IT 기술의 결합 만큼이나 낯설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저널리즘 조직이 오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에 눈을 돌린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빌 뉴스룸 개념도. (사진=시빌)

이번 제휴의 핵심은 시빌이 개발 중인 블록체인 기반 라이선싱 시스템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AP 기사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AP 콘텐츠를 마구 가져다쓰는 사례를 적발하는 것도 중요한 제휴 목적 중 하나다. AP는 또 시빌이 발행하는 CVL 코인도 갖게 된다.

시빌은 그 대가로 AP 기사를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 AP 기사는 시빌 산하 14개 뉴스룸에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뉴스 유통 측면에서 AP의 고민은 B2C 쪽이다. 그 동안 제휴를 맺은 언론사들의 콘텐츠 사용을 추적하는 덴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인터넷 유통을 추적하는 건 쉽지 않다.

문제는 또 있다. 자신들의 콘텐츠를 적당히 갈무리한 뒤 가짜뉴스(fake news)나 허위정보용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AP의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시빌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이런 부분을 세밀하게 추적하겠다는 게 이번 제휴에 임하는 AP의 생각이다.

대표적인 뉴스 통신사 AP와 신생 블록체인 미디어 시빌의 결합은 저널리즘의 오랜 고민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언제부터인가 생산 못지 않게 중요해진 뉴스 유통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기사 낱개 소비 시대, 블록체인 기술이 어떤 역할할까

최근 뉴스 시장의 문법이 많이 달라졌다. 언론사 단위 묶음 상품 소비가 줄면서 기사 낱개 소비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패키지의 해체’로 명명함직한 이런 변화로 인해 개별 뉴스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개별 뉴스를 무단 활용하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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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휴는 기술 변화로 새롭게 대두된 저널리즘 현장의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야심을 담고 있다. 전신 시절 객관보도와 역피라미드 기사쓰기란 혁신을 이뤄냈던 레거시 미디어 대표 주자 AP는 과연 변화된 환경에 대응할 새로운 해법을 또 다시 찾아낼 수 있을까?

전통과 혁신의 결합으로 명명함직한 이번 제휴를 지켜보면서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꺼내들었다. 멋진 성공 사례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