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호주처럼 피해자 중심 대처해야"

사이버컴학회, 디지털 성범죄 대응책 모색

인터넷입력 :2018/08/24 17:48    수정: 2018/08/24 18:00

“호주 판례를 보면 디지털 성범죄에 준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할 당시 피해자가 동의하더라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고 찍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사회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디지털 회복 탄력성을 유도하고 있다.”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소영 강사는 24일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로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제도적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학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제도적 대응 방안 토대를 마련하고자 이번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정소영 강사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호주 사례를, 대전대 법학과 김슬기 조교수는 영국과 미국 사례를 소개했다.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는 24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제도적 대응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 호주,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48시간 이내 삭제 의무 부과

정소영 강사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이미지 기반 학대’란 포괄적인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 성적인 것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학대당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호주의 경우 5명 중 1명이 이미지 기반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고 정 강사는 설명했다.

호주는 뉴 사우스 웨일즈 주, 빅토리아 주에서 형사법으로 이미지 기반 학대를 다루고 있으며, 서호주 주에서는 형법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호주에는 인터넷 상 이미지 기반 학대 촬영물에 대해 다루는 인터넷 안전 위원회라는 기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정 강사는 “호주 의회에서는 우리나라 방심위와 같은 기관인 인터넷 안전 위원회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나 웹사이트에 이미지 기반 학대 촬영물을 제거하라는 통지를 보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입법이 진행 중이다”며 “이를 요청받으면 업체는 48시간 이내에 삭제할 의무가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개인은 8천600만원 기업은 4억3천만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 강사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인터넷 안전 위원회가 이미지 기반 학대에 대한 전국 온라인 고충 처리 및 신고 포털을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40억원을,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해 82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정 강사는 “우리나라 판례를 보면 피해자가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고도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말을 듣는데 호주 판례를 보면 피해자를 잘 이해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현재 우리나라 여성가족부가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를 쓰는 걸 지양하라고 홍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 판례를 보면 이미지 기반 학대와 관련한 불법 촬영물의 완전 삭제가 어렵다는 측면에서 피해자 잘못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충분히 재기해 잘 살 수 있다는 디지털 회복 탄력성을 많이 유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호주 정부의 대응을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영국, 인터넷 상 불법 촬영물 제재 기구 미비

대전대 법학과 김슬기 조교수는 미국과 영국에서의 디지털 성범죄의 법적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사이버인권보호기구가 2017년 비동의 음란물에 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의 없이 피해자의 성적 이미지 또는 영상물을 유포하거나 유포하겠다고 협박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12.8%가 그렇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적 이미지 또는 영상을 전송한 동기엔 복수나 영리의 목적 보다는 특별한 가해 의사 없이 친구와 이미지를 공유했던 비율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복수의 목적으로 불법 촬영물을 전송한 사람이 19명이라면, 인터넷 상의 반응을 얻기 위해서나 친구와 재미 목적으로 공유한 등의 사유로는 168명에 달했다.

김 조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디지털 성범죄를 ‘비동의 성적 영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불법 촬영과 불법 유포를 구분해 다루고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물의 불법 유포에 대해 입법이 완료된 주는 40개 주에 달한다. 다만 인터넷상 불법 촬영물에 대해 제재하는 방심위 같은 기구는 따로 없었다.

김 조교수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불법촬영은 과거 성범죄라기 보단 사생활의 침해로 이해되다가 영국은 최근 성적 만족이라고 하는 일종의 목적에 가까운 표현인 관음행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연방 관음행위 방지법으로 동의 없는 촬영에 대해선 처벌 규정을 뒀고, 아리조나 주에서는 피해자의 신분이 누군지 알도록 촬영된 것과 아닌 것의 범죄 등급이 달라지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불법유포와 관련해서는 “비동의 성적 영상에 관한 입법이 각 주를 중심으로 시작된 후 효과적 제재를 위해 연방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면서 “이에 2016년에 관련한 연방 법률안이 발의됐고, 실리콘밸리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각 주의 입법 현황 여부.

영국은 디지털 성범죄를 ‘사적인 성적 영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불법촬영과 유포를 다른 범주로 다뤘다. 방심위와 같은 기구도 부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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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조교수에 따르면 영국은 불법 촬영을 성적 목적의 관음행위를 성범죄 법에서 규정하고, 불법 유포에 대해선 형사사법재판법에 따라 해악성과 유책성을 척도로 세분화된 단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조교수는 “이 같은 영국의 법은 불법 유포에 대한 형벌 부과를 과중히 하고 제도화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형법에 따라 법정형만으로 처벌하지 말고 양형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