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는 진짜 경제 돌팔이의 처방일까

[이균성 칼럼] 신뢰의 경제학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24 16:00    수정: 2018/11/16 11:15

#대기업 계열 C 대표는 지난해 말 위암 진단을 받았다. 그 때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 이미 걸렸던 암을 그 때 확인했다. 평소엔 몰랐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진단을 받고서야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진짜로 아팠다. 아프다는 걸 알자 몸은 더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너무 늦진 않았다. 병원의 권고로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나니 더 아팠다. 몸무게가 20Kg 가량 빠지고 병색이 완연해졌다.

#한국 경제도 병이 들었다. 언제부터 병에 걸렸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다만 아프다는 데는 다들 동의한다. 통계를 부인할 수 없다. 잠재성장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일자리는 줄고 빈부격차는 크다. 기업 경쟁력은 갈수록 약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수술을 택했다. J노믹스. 소득주도, 혁신성장, 공정경제. 수술을 시작하니 되레 더 아프다. 통계수치가 더 나쁘다.

J노믹스 자료 이미지.(사진=이미지투데이)

#7월에 국내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5천개다. 최근 몇 년간 월간으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30만 개 안팎이었다. 그게 지난해부터 10만개 수준으로 줄더니 급기야 1만개 이하가 되어버렸다. 일자리를 무엇보다 먼저 고민하겠다던 대통령에게는 무참한 일이다. 또 있다. 빈부격차도 더 커졌다. 2분기에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5.23배다. 10년래 최고 수치다. 약(藥)을 줬더니 독(毒)이 되었다.

#“기회다.” 2년전 최순실 국정농단 행적이 꼬리를 밟히기 시작한 후 거의 괴멸 상태까지 몰린 우(右)에겐 절호의 찬스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라. 저격 대상은 J노믹스. 그중 소득주도를 집중적으로 쳐라. ‘빨갱이 경제’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려면 삼발이(소득주도,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외발이(소득주도)로 환치시켜라. J노믹스는 오직 ‘세금기반의 포퓰리즘 소득주도’ 밖에 없어야한다.”

#반(反)J노믹스는 정부 수립이후 70년 가운데 12년을 뺀 58년 동안 이 나라의 주류 경제관이었다. 그 공(功)은 실로 작지 않다. 공이 크면 관성도 크다. 관료도 정치도 산업도 언론도 여전히 그들이 주류다. 삼발이를 외발이로 만드는 것쯤이야 간단하다. 대통령 지지율도 뚝뚝 떨어진다. “바꿔도 별 게 없다. 차라리 박근혜 정부가 낫다.” 신났다. 난리도 아니다. 대통령을 탄핵이라도 하려는 기세.

#진정한 의사는 병의 원인을 제대로 찾으려 한다. 그래야 좋은 처방을 할 수 있다. 의사마다 그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늘 환자와 병이 먼저여야 한다. 칼을 든 의사와 가위를 든 의사가 서로 옳다고 싸운다면 환자는 수술대 위에 올라갈 수 없다. 경험 많고 수준이 높은 의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싸워봐야 득 될 게 하나도 없음을 안다. 다만 상대를 취해서 나를 보강하려 한다.

#모든 경제이론과 사회과학은 일리가 있다. 일리는 그러나 절대선은 아니다. 단지 때에 따라 선택될 만한 가치가 있을 뿐이다. J노믹스나 반(反)J노믹스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것도 절대선이 아니다. 서로 보완되어야 할 일리일 뿐이다. 지난 대선이 내린 ‘국민의 명령’은 절대선에 대한 망령된 믿음을 버리라는 뜻일 수 있다. J노믹스와 반(反)J노믹스를 잘 섞어 환상적인 ‘경제 칵테일’를 만드는 것.

#J노믹스를 폐기하라거나, J노믹스 만이 답이라 주장하는 것은, 그러므로 ‘국민의 명령’에 반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마중물과 펌프질’ 이야기는 양쪽 모두 참고할 만하다. 마중물은 민간이 할 수 없는 영영에 대한 국가 재정의 확대를 말하고, 펌프질은 기업 기(氣) 살리기를 뜻한다. J노믹스 삼발이 가운데 앞은 소득주도 쪽에 뒤는 혁신성장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셈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J노믹스나 반(反)J노믹스가 공존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다. 둘은 서로 보완되어야 할 존재이지 너든 나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적대관계가 아니다. 양쪽 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를 더 곱씹어봐야 한다. 두 번째 큰 걸림돌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화타나 편작이 환생을 해도 중병에 걸린 환자를 바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다. 모두 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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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대표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서너 달 죽도록 고생하니, 몸도 조금씩 회복됐다. 과거를 되돌아보게 됐다. 격무와 스트레스, 술과 담배 그리고 폭식, 거들떠보지도 않던 운동. 몸을 망가뜨린 많은 이유들. 이젠 달라졌다. 일도 줄이고 술 담배 끊고 적게 먹고 많이 걷는다. 빠진 체중도 다시 적당히 늘었다. 아픈 걸 알기 전엔 너무 뚱뚱했고 수술하고 나선 너무 말랐지만 이제는 딱 보기 좋다.

#한국 경제도 그럴 수 있다. C 대표가 몸을 맡긴 건 의사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한국 경제도 살려면 경제 주체들 사이의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를 쌓으려면 ‘지식의 이념화’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지식의 이념화’는 신뢰의 적이다. J노믹스도 반(反)J노믹스도 돌팔이가 아니다. 둘 다 근거가 뚜렷한 일리(一理)다. 돌팔이라고 욕하는 순간 ‘지식의 칼’은 음식을 만드는 용도가 아니라 흉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