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업이 '잠재적 범죄집단'인가?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⑤] 블록체인

컴퓨팅입력 :2018/07/24 10:08    수정: 2018/07/24 16:13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 혁파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달라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따라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12개를 골라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⑤블록체인 기업이 잠재적인 범죄집단인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대부분과 다수의 블록체인 업체들은 해외 기업과 정상적인 사업 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은행에서 해외 송금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거래소 A업체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하다 못해 시장조사를 하려고 해도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에 비용을 지불할 방법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블록체인 기술기업 B업체 대표는 "은행들이 불법·테러자금 이동을 막는다며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의 해외 송금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행위"라며 "블록체인 관련 기업을 모두 범죄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법적 근거 없는 규제로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의 성장판이 닫히고 있다. 업계는 금융권은 물론 경찰, 검찰도 블록체인 기업을 '잠재적 범죄 집단', '요주의 대상'로 낙인찍어 한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블록체인 블랙리스 리스트 존재하나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나 관련 법규정은 전무하다. 그렇다고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이 규제 무풍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 테두리 밖에서 임의로 행해지는 가혹한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는 금감원이 만들었다는 블록체인 블랙리스트 명단이 돌고 있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런 명단이 떠도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겪지 안았을 불이익을 경험한 사례가 이 업계에서만 너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은행에서 법인 계좌를 개설해 주지 않거나 해외 송금을 거부했다는 사례는 물론, 업태에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가 들어가면 사업자등록증을 내주지 않았다는 사례도 다수 있다.

은행 법인계좌 개설, 해외 송금, 사업자등록은 기업활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마저도 블록체인 업체들에게 쉽게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면 회사를 접으라고 하는 수준"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이런 규제가 아무 법적 근거 없이 '초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 블록체인 업체들은 좌절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 등이 블록체인 관련 업체는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하고, 행정편의를 위해 헌법상 명시돼 있는 기업 활동의 자유까지 가로막으며 초법적 규제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다.

법무법인 우일 안영주 변호사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관이 금융권 등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아무 법적 근거 없이 규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회장(글로핀 대표)은 "정부가 암호화폐·블록체인에 대한 어떤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이런 과도한 규제가 임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블록체인 신설 법인에 계좌를 내주지 않으면 회사를 만들어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일부 업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량한 기업이 사업하는 것까지 막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대로 된 규제 언제 나오나...규제 불확실성에 한국 블록체인 경쟁력 흔들

기업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펼치려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업계는 정부에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규제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미지근하다. 올해 1월 이후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한풀 꺾인 후, 블록체인,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으로 품기 위한 정책 마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암호화폐 시장 관리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혁신기획단을 신설한 것이 전부다.

지난해 9월 구두로 발표한 암호화폐 공개(ICO) 금지에 대해 이후 어떤 언급도 없는 것은 물론, 공공연하게 정부가 암호화폐와 암호화폐를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기업에 대해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표출하고 있다.

국회가 나서 다양한 블록체인 활성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계류 중이다. 정병국·정태욱·박용진 의원이 각각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 마련과 투자자 보호 규정을 포함한 법안을 발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언제까지 규제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지금 같아선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이 고사(姑死)하길 바라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중국 정부 산하 CCID가 발표한 세계 퍼블릭 블록체인 순위. 중국 업체가 3위부터 5위까지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이, 국내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의 경쟁력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빗썸과 업비트는 거래량 기준 세계 1·2위 거래소 자리를 놓고 다퉜지만, 이제는 중국계 거래소들에 그 자리를 모두 뺏겼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가장 큰 규모의 ICO 성공사례(약 3천억원)로 기록된 에이치닥(HDAC)과 역시 지난해 ICO해 현재 암호화폐 시가총액 2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콘 이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한국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도 우리처럼 ICO를 금지하고 있지만,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정부 산하 정보산업발전연구원(CCID)를 통해 발표하는 글로벌 퍼블릭 블록체인 순위에서 자국 기업이 발행한 암호화폐와 퍼블릭 블록체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우수성을 알리는데 적극적이다. 최근 발표한 CCID 평가 10위 안에네뷸러스, 지엑스체인, 네오 등 중국계 코인을 3개나 포함시켰다.

업계는 세계 블록체인 시장을 주도할 '골든 타임'이 지나고 있다며 빠른 정책 수립이 필요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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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주 변호사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우리나라가 블록체인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정책판단, 법령제정 및 정책집행까지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과감한 법령정비와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변호사는 "개혁의 방향은 네거티브 방식을 취해야 한다"며 "자금세탁, 탈세, 테러 및 불법자금, 개인정보보호, 기타 불법 행위 근절 등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으로 정비하면 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