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에 혁신을 허(許)하라

[기자수첩] 인가했다면 책임도 져야

기자수첩입력 :2018/07/17 08:11    수정: 2018/07/17 08:14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하반기 사업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유상증자 계획이 차질을 빚은 때문이다. 케이뱅크는 당초 1천500억원 규모 증자를 계획했다. 하지만 3대 주주(KT·우리은행·NH농협투자증권)만 참여하면서 300억원어치 전환우선주만 발행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급한 불은 껐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건 여전하다. 소상공인이나 영세 카드가맹점을 위한 앱투앱 결제는 물론이고, 중금리 대출까지 앞날이 불투명하다.

유상증자가 차질을 빚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20여사에 이르는 주주들간의 팽팽한 의견 대립이 걸림돌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증자 규모와 시점에 대해 합의점을 끌어내기 힘들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 과정에서 '은산분리 규제'란 현실적 장벽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경쟁력을 갖기 힘들 것이란 의구심 때문에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선뜻 합의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갖고 있는 주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은산분리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케이뱅크 뿐 아니라 카카오뱅크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과 동일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에 대한 규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주주 중 KT와 카카오는 비금융주력자이기 때문에 은산분리 규제의 지배를 받는다. 이들은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으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10% 이하의 범위의 주식을 가질 수 있다.

1961년 도입된 은산분리는 올해로 시행 58년차를 맞고 있다. 비금융주력자가 보유할 수 있는 은행의 주식 총수가 한때 4%에서 9%로 높아졌다가 다시 4%로 줄어든 것 외에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 지배, 은행의 사금고화 등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든든히 해 왔다. 그러다보니 국민적 지지도 꽤 높은 편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를 풀어달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은산분리 완화=혁신'이란 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다. 은산분리 규제가 풀린다고해서 단번에 눈에 띄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규제 완화 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생길 수 있다며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사태'를 거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냉정하게 한번 따져보자. 과연 우리가 인터넷전문은행들이 혁신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대로 제공해준 적이 있는지를. 오히려 혁신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혁신의 기회를 원천 봉쇄해온 건 아닌지를.

은행권의 '메기' 역할을 기대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을 인가한 금융당국은 정부가 바뀐 후 두 은행의 어려움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청와대에서 '혁신' 운운하자 그제서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은산분리 제도를 재점검할 시기"란 발언을 했다. 한 국가의 은행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당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규제 완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혁신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혁신에 대해 비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밀진 않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도입한 서비스들 중엔 소소해 보이지만 의미 있는 혁신이 적지 않았다. 특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구성은 충분히 칭찬해줄만하다. 카카오뱅크 앱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놀랐고, 은행권 역시 앞다퉈 이를 배우고자 했다. 시중은행은 공급자 위주 중심으로 구성된 앱을 개편하며 고객 편의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당시 금융당국은 중신용자(신용등급 4~6등급)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대출 확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 동안 시중은행들은 중신용자들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았다. 리스크 관리란 명목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중신용자들은 금리가 훨씬 높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면서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모델을 새롭게 구축해, 중금리대출의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시중은행도 뒤늦게 중금리 대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메기 역할'을 해낸 또 다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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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완화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가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가지않는 길을 가는 것만큼 불안한 일은 없다. 하지만 가지 않았던 길이란 이유만으로 포기할 경우 기회비용이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한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영원히 택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얻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