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부회장, 더 자주 만나시라

[이균성 칼럼] 대화가 번영을 이끈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10 10:10    수정: 2018/11/16 11:19

인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습니다. 삼성이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 세운 휴대폰 공장 준공식 자리에서였습니다. 이 곳은 두 나라 경제 협력의 상징이기도 한 장소입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제안으로 양국 정상은 지하철을 타고 이 곳까지 갔다 합니다. 이 부회장은 직접 양국 정상을 공장으로 안내했구요.

문 대통령은 특히 준공식 직전 이 부회장을 따로 불러 5분간 대화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에게 "인도 고속 경제성장에 삼성이 큰 역할을 해줘 고맙다"며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는 겁니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맞아 깍듯이 예우하면서 "문 대통령의 방문이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현지시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개최된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생산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둘의 첫 만남을 놓고, 만나기전부터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연루돼 있고, 구속 뒤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취임 이후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경제 외교 순방길에서 삼성그룹 오너는 빠져 있었습니다. 삼성에서는 전문 경영인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 참석했죠.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첫 만남을 놓고 일단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후자입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문제가 되레 악화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좋은 점수를 따고 있지만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문제가 복병이 된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고 지금까지와 달리 친기업적인 정책으로 돌아설 거라는 해석인 것입니다. 청와대는 이런 해석에 대해 경계하는 눈치입니다. 자칫 그 의미가 확대 해석될 경우 ‘적폐 청산’은 적당히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폐 청산’은 문재인 정부 출범의 토대이고 이 논란이 확대되면 지지자들이 돌아설 수도 있겠지요.

이를 지켜보면서 조금 더 유연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쳐야 해결될 사안도 있겠지만, 아주 복잡하고 중첩적이어서 얽혀있는 실타래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찾아내서 풀어야 될 것들이 어쩌면 더 많습니다. 문 대통령도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 모순되는 입장에 처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같은 것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 부회장은 재판을 받는 피의자지만 삼성 그룹 총수이기도 합니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해야 될 역할이 적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켜켜이 쌓은 적폐를 청산해야 하지만, 젊은 청춘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에도 고민해야 합니다. 둘이 가는 길이 달라 보이지만 어쩌면 둘은 함께 같은 길을 가야 할 수도 있지요.

다만 같이 걸어가는 그 방식이 과거와 다르길 바랍니다. 은밀하게 만나고 둘 사이에 특혜가 오가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대의명분으로 만나고 그 만남의 결과를 떳떳하게 공개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북 정상회담처럼 말이죠. 비록 5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두 사람 다 한국 경제의 변화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분들이기에 무엇인가 뜨거운 공감을 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외부 시선도 변하면 좋겠습니다. 이 부회장의 피의 사실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하는 게 아니라 사법부 몫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하거나 끼칠 거라는 생각을 이제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대한 경도된 생각은 둘의 만남에 오해를 불러오고 엉뚱한 해석을 낳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두 분이 가질 대의명분과 그 결과를 사산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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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두 분이 더 자주 만났으면 합니다. 그 만남이, 대통령이 총리나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빼앗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로지 대의명분으로 만난다면 자주 만난다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기업 총수들도 마찬가지구요. 노동자 단체 대표도 같이 만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양쪽의 참모들이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대화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많이 바뀔 겁니다.

대화가 번영을 이끌어 낼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