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왜 '위치정보 추적 위헌' 판결했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포괄적 허용' 문제 삼아

데스크 칼럼입력 :2018/06/29 15:04    수정: 2018/06/29 15: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요즘 범죄 수사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 중 하나가 ‘휴대폰 위치 추적’이다. 특정 기지국 통화 내역을 대거 수집하는 ‘기지국 수사’ 역시 널리 활용된다. 이런 수사를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통신비밀보호법 2조와 13조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지난 28일 두 조항 중 일부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했다. 헌법불합치란 위헌 소지가 있지만 곧바로 폐지할 경우 법적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조치다. 헌법재판소는 법률 개정 시한을 2020년 3월31일로 잡았다.

뉴스를 접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위치추적 자체가 금지되는 건가?”란 원초적인 의문이었다.

궁금증을 푸는 덴 원자료 만큼 좋은 게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사이트에 올라온 판결 요지를 출력했다. A4 10쪽 분량이었다. 찬찬히 읽어봤다. 예상했던 대로 ‘휴대폰 위치 추적 수사’ 자체를 금지한 건 아니었다. 수사기관의 휴대폰 위치 정보 요구 조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돼 있는 게 문제가 됐다.

(사진=헌법재판소)

■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가 과잉금지 원칙 위배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는 “수사 또는 형의 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건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란 부분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판단했다.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이다.

명확성 측면에선 문제가 없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다. 범인 발견 등의 수사기관 활동 목적 이내란 측면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잉금지 원칙’이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기관의 한계를 명시한 것이다. 우리 헌법 37조2항에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침해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란 게 헌재 판단이었다.

위치 정보는 특정 시간대 개인의 위치 및 이동 상황에 대해 소상하게 알려준다. 그만큼 민감한 정보다. 그런데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이런 민감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게 되면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헌재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허가 신청에 대한 법원의 기각률은 약 1%에 불과하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위치정보) 제공 조건으로 수사의 필요성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 생략) 법원은 이를 허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헌재는 보충성 요건을 추가하거나, 대상 범죄의 경우에 따라 보충성 요건을 차등 적용하는 등의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이렇게 할 경우 수사 목적 달성과 정보 주체의 기본권 보호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충분히 보완 가능함에도 제대로 개인정보 보호조건을 부과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인 셈이다.

위치정보를 수집했을 경우 해당 개인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한 13조 3항에 대해서도 헌법 불합치 판결을 했다. 현행 법에서는 ‘공소를 제기하거나 제기하지 아니하는 처분을 할 경우’ 30일 이내에 그 같은 사실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기소중지 결정을 할 경우엔 통지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헌재는 “수사가 장기간 계속되거나 기소중지된 경우에는 정보주체는 자신의 위치정보가 범죄 수사에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수사가 끝난 경우 위치정보 추적자료를 파기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부분도 문제라는 게 헌재의 생각이다.

■ "포괄적 조건 때문에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헌재는 수사기관들이 휴대폰 위치정보를 범죄 수사에 활용하는 부분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원의 영장이 있는 경우엔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포괄적 허용 규정 때문에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통신 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헌재의 지적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완하는 법률 개정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골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연방대법원도 휴대폰 위치추적 정보를 수사에 활용할 때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그런데 이 판결 역시 곰곰 읽어보면 ‘현실적 필요’를 인정하면서 사생활 보호란 법적 취지도 함께 살리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사진=헌법재판소)

연방대법원은 수사를 위해 실시간 위치 정보를 추적할 땐 굳이 영장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한 개인의 장기간에 걸친 이동 경로를 추적할 경우엔 반드시 영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법원 판결문에는 영장이 필요없는 시한을 ‘최대 6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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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들은 이상적인 법 이론을 탐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법의 원칙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그런만큼 누구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 헌법재판소와 미국 연방대법원이 연이어 내놓은 판결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읽으면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 다음엔 ‘과연 이상과 현실 사이에 제대로 된 균형점을 찾았는가?’란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