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5조였는데...11번가, 기업가치 2조 왜?

“잇단 투자유치 불발 탓" vs "매력적 조건”

유통입력 :2018/06/19 18:53    수정: 2018/06/20 08:00

SK플래닛에서 독립 법인으로 떨어져 나오게 된 11번가가 5천억원을 투자 받으면서 기업가치를 ‘2조원 이상’으로 평가받은 것에 업계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거래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쿠팡이 지난 2015년 소프트뱅크로부터 1조1천억원 투자 받을 당시 기업가치 5조원으로 평가받은 것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은 11번가의 기업가치가 생각보다 낮다는 의견이나, SK 측은 매력적인 조건으로 투자 받았다는 입장이다.

19일 SK플래닛 모회사인 SK텔레콤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 등으로부터 11번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에는 국민연금(3천500억원)과 새마을금고(500억원)가 참여했다. 나머지 1천억원은 2013년 H&Q가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투자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펀드)를 활용한다.

11번가.

투자는 11번가가 신규 발행하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1번가는 5천억원을 투자 받는 조건으로 회사 지분의 18.2%를 신규 투자사에게 내주게 됐다.

이에 이커머스 업계는 11번가가 기업가치를 너무 적게 받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2015년 쿠팡이 일본의 소프트뱅크로부터 10억 달러를 투자 받을 당시 이 회사의 2014년 매출은 3천485억원 수준이었다. 그 후로 쿠팡은 직매입 방식의 로켓배송과 오픈마켓 서비스를 선보여 지난해 매출 2조7천억원, 거래액 4조~5조원을 기록했다.

반면 11번가의 지난해 거래액은 9조원으로, 쿠팡에 비해 2배 가까운 거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작년 11월 행사 때 월 거래액이 1조원을 육박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들에 힘입어 11번가는 2017년 연간 거래액이 2년 전보다 50%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11번가는 지난해 방문자 수에서도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등 6개 업체 가운데서도 1위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클릭 조사 결과 11번가는 월평균 1천323만명이 방문, 3년 연속 순방문자 수 1위를 차지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

투자 업계에 따르면 거래와 매출 규모에서 크게 뒤지는 위메프나 티몬 등도 기업가치를 2조원 내외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11번가의 이번 기업가치 평가가 생각 보다 낮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위메프의 지난해 매출은 4천700억원, 티몬의 지난해 매출은 3천600억원이다.

이커머스 기업 한 관계자는 “거래 규모나 상품 수 등 월등히 높은 11번가의 이번 기업가치 평가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서 “몇 년 전 쿠팡이 과도히 높게 평가 받았거나, 이번에 11번가가 지나치게 낮게 받았거나, 혹은 둘 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통 이커머스 기업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거래액의 0.6% 정도를 곱한 금액 정도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셈법으로 보면 이번 11번가 기업가치는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이번 평가가 투자유치가 필요한 다른 이커머스 기업들에게도 좋지 않은 기준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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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중국 사모펀드, 신세계 등과의 투자 협상이 불발돼 11번가가 다소 불리한 기업평가를 받고서라도 투자금을 받으려 한 것 아닌가 싶다”면서 “5천억원을 어느 곳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11번가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SK 측은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 받을 당시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한창 뜨겁다 보니 과도하게 높은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다”며 “이번 투자 과정에서 이뤄진 11번가 기업평가에 대해 자체적으로는 매력적인 수준이라 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