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무너지면 중소CP 붕괴”

[긴급진단-망중립성③] 인터넷 업계·시민단체 주장

인터넷입력 :2018/06/24 12:00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서 국내에서도 후속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ISP)를 중심으로 미국처럼 망중립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통신사들은 인터넷의 ‘효율성’과 ‘전송차별화’, ‘투자유인 제고’ 등을 논거로 망중립성 대신 망관리론을 앞세우고 있다. 투자와 수익의 불균형으로 5G 기술의 투자가 위축되고 생태계가 왜곡되고 있으니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와 시민단체 생각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이었던 망중립성 정책이 유지돼야만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인터넷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 망중립성 완화→출혈경쟁→공룡기업 시장 잠식→인터넷 생태계 파괴

국내는 망중립성 원칙이 가이드라인 형태로 존재할 뿐 법제화되지 않았다. 2011년 12월 방통위가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 ▲망사용차단 금지 ▲트래픽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거나 완화될 경우 인터넷 기업들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기업들이 모든 이용자에게 차별 없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망중립 원칙이 사라질 경우 글로벌 공룡 기업들의 시장 잠식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건전한 경쟁을 통한 이용자 후생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력을 앞세운 해외 기업들의 시장 잠식으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 800조원에 달하는 구글이 국내에서 고화질, 고용량 서비스를 더 빠른 속도로 제공할 경우 시가총액 23조원인 네이버조차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또 인터넷 업계는 고화질 동영상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가상현실(VR)과 같은 대용량 데이터가 서비스가 늘어나는 시대에 망 차별은 신생 인터넷 업체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주장이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통신사(ISP)와 콘텐츠제공사(CP)의 가상 대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차재필 정책실장은 “5G 시대가 되면서 망 투자비가 드니 이를 위한 비용을 콘텐츠제공사 쪽으로부터 받으려 한다”면서 “망중립성이 폐기되거나 완화될 경우 돈 없는 기업들은 아예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 된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은 나오기 힘든 구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망중립성 폐기가 현실적으로 국내에 미칠 영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우려할만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미 정부 차원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통신사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차 실장은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에서 주로 논의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망중립성과 제로레이팅(스폰서 요금제)”이라면서 “이통사들이 망중립성 완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정책 보고서가 통신사에 유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트래픽 현황 투명해야...5G 수익 저하 논리 틀려”

자본력에 따라 인터넷 속도가 달라진다면 네이버와 카카오 조차 글로벌 공룡 기업들에게 잡아 먹힐 수 있다.

망중립성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과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통신사들의 트래픽 관리 현황이 먼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인터넷 진보단체인 오픈넷이 박지환 변호사는 “방통위가 상생협의회를 꾸려 망중립성 정책 논의를 위해 시민사회 등 이용자 의견을 청취하려는 등 변화된 자세는 긍정적”이라면서도 “망중립성 정책 관련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판단의 근거가 될만한 트래픽 관리 현황 등 관련 정보와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망중립성 원칙 폐기 이후에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여전히 트래픽관리와 관련한 정보와 데이터를 계속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통신비 원가공개 소송에서 대법원이 밝힌 바와 같이 공공성이 매우 큰 영역이므로, 국민의 알권리와 효과적 규제 디자인을 위해 관련 정보와 데이터들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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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통신사들이 5G 망 투자를 명목으로 망중립성 완화를 주장하는 논리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는 “5G 서비스를 위해 막대한 망 투자비가 들어가는데, 이를 소수 대형 콘텐츠 제공 회사들이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도 합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통신사 논리에 반박했다.

방통위 상생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넷 오병일 활동가는 “인터넷 망사업자에게 별도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더 빠른 서비스가 가능한 생태계가 된다면 인터넷 혁신은 더욱 힘들어지고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면서 “5G 기술이 인터넷 접속서비스라는 속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5G 서비스에 대한 통신사의 기대수익 감소에 따른 망중립성 완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