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는 개발자 설득에 성공했을까

컴퓨팅입력 :2018/06/14 08:27    수정: 2018/06/14 09:08

[올랜도(미국)=김우용 기자] 시스코시스템즈는 2014년부터 개발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당시 데이터센터 업계를 강타한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흐름에 대응하는 행보였다. 당시 IT업계 전문가들은 엔지니어 친화적 기업인 시스코가 과연 개발자에게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올해까지 4년동안 시스코는 데브넷이란 개발자 커뮤니티를 뚝심있게 운영중이다. 시스코는 올해 데브넷 등록 개발자 규모가 5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히며, 규모의 경제를 발휘할 이정표를 생태계에 수립했다고 강조했다.

지금 시점에서 전문가의 의문대로 시스코는 전세계 개발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을까?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이다. 오히려 질문 자체가 잘못인지 모른다.

시스코라이브2018 행사장에 마련된 데브넷 부스. 전체 솔루션 전시장의 절반을 데브넷 공간이 차지했다.

SDN 기술이 본격적인 바람을 일으키던 2014년 당시 시스코는 여러 위기설에 시달렸다. SDN 기술이 특정 하드웨어에 대한 네트워크 기능의 종속성을 제거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긴밀한 통합을 강조해온 시스코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란 전망이었다.

한편으로 SDN은 서버 엔지니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네트워크 엔지니어에 의지하지 않고도 각종 네트워킹 인프라까지 관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네트워킹 솔루션 기업들이 개발자란 새로운 사용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시스코의 데브넷도 개발자를 새롭게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시스코는 데브넷을 통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혁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경쟁하는 해커톤도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네트워킹 기능을 API와 SDK로도 제공하고 있다. 그 결과가 50만명 이상의 데브넷 회원으로 나타났다.

과연 50만명이란 규모가 개발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는지 확실치 않다.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SDN을 익히기 위해 시스코 데브넷에 가입한 것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코는 데브넷에서 일컫는 '개발자'를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다고 설명한다.

수지 위 시스코 데브넷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시스코가 개발자를 말할 때 매일 수백줄의 코드를 만들어내는 코더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며 "당신의 네트워크가 거대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는 전형적인 개발자를 끌어들인 게 아니라 기존 시스코 네트워크 관리자를 개발자로 변신시키는 방향으로 데브넷을 운영했다는 얘기다.

수지 위 시스코 데브넷 CTO

수지 위 CTO는 "당신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한다면, 당신은 개발자다"라며 "왜냐면 당신의 네트워크가 더 많은 역량을 얻고, 변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신의 네트워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고, 프로그램 가능하며, API를 가졌고, 코드로 만들어졌다"며 "당신의 네트워크는 인텐트 기반 네트워크로 변하고 있고, 네트워크를 개발한다면 당신은 '네트워크 개발자'다"라고 덧붙였다.

시스코는 여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자타공인 네트워킹 솔루션 최강자다. 시스코 라우터와 스위치는 엔터프라이즈,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등에서 강력한 지위를 차지하며, 전세계에 시스코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엔지니어의 수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시스코가 기존의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외면하고, 개발자만 바라볼 수 없다. SDN 개념이 등장하면서, 동시에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일자리 감소 우려가 강력하게 제기됐다는 점에서 더욱 시스코의 행보를 이해하기 쉽다.

SDN의 등장은 IT운영팀의 전문가 영역을 붕괴시켰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보안 등으로 나뉘었던 IT운영조직은 가상머신, 혹은 워크로드 단위로 재정비됐다. 더 이상 네트워킹 전담팀은 없고,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자신의 팀을 주도하지도 않는다. 다른 분야 전문가와 협력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졌고, 심지어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서버와 스토리지 영역을 잘 이해해야 한다.

SDN 기술이 얼마나 퍼질 수 있느냐를 점치던 2014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많은 전문가는 개발자가 네트워킹이란 전문 영역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SDN 확산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 전망쳤다. 코딩에 익숙한 개발자가 IP, 라우팅, 보안정책 등까지 꿰둟어 이해하기 힘든 탓이다. 그만큼 네트워킹이란 분야는 그만의 전문영역으로서 장벽을 높이 쌓았다.

시스코는 네트워킹 엔지니어가 완벽한 초보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데브넷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수지 위 CTO는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스코라이브 행사에서 처음으로 데브넷 행사를 운영했다"며 "당시 숙련 네트워킹 엔지니어 한명이 내게 와서 자신은 코드를 전혀 모르는데 개발을 배울 수 있을지 겁난다고 말해 용기를 내 데브넷을 경험하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엔지니어가 당시 행사에서 만난 프로그램은 1단계 학습 프로그램으로 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개발 역량을 차근 차근 쌓을 수 있는 것이었다"며 "그렇게 네트워킹 엔지니어를 개발자로 변모시키는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네트워킹 엔지니어, 관리자, 아키텍트 등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라도 네트워크 스택의 전 레이어에서 애플리케이션과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하고, 네트워크가 어떻게 애플리케이션에 대응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자가 네트워킹을 배우는 것보다, 이미 네트워킹이란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인 만큼 개발역량까지 갖게 되면 강력한 경쟁력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시스코 데브넷은 혁신을 가속할 세 가지 신규 개발자 기능을 올해 시스코라이브에서 발표했다. 데브넷 에코시스템 익스체인지(DevNet Ecosystem Exchange)는 시스코 플랫폼에 적용되는 애플리케이션 또는 솔루션을 쉽게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포털이다. 현재 1천300개 이상의 솔루션이 등록됐다. 개발자뿐 아니라 비즈니스 리더도 해당 포털을 통해 시스코 플랫폼 및 제품 전체를 아우르는 파트너 솔루션들을 발견할 수 있다.

데브넷 코드 익스체인지(DevNet Code Exchange)는 개발자에게 소프트웨어 접근 및 공유 권한을 제공해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및 워크플로우 통합을 신속히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스코와 데브넷 커뮤니티가 작성한 샘플 코드, 어댑터, 툴 및 SDK는 깃허브(GitHub)를 통해 제공되고 있으며, 코드 익스체인지는 시스코 플랫폼 및 제품 분야별로 정리돼 시스코 전체 포트폴리오를 아우르는 자원을 제공한다.

데브넷 DNA 개발자 센터(DevNet DNA Developer Center)는 개발자에게 DNA 센터 플랫폼용 애플리케이션 및 통합 설계에 필요한 모든 자원, 기능, 사례 및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

데브넷의 특징은 네트워킹 엔지니어, 개발자, 비즈니스 운영자, 시스코 파트너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참가자가 유기적으로 협력하게 한다는 점이다. 엔지니어와 개발자는 데브넷에서 찾을 수 있는 API를 통해 애플리케이션과 네트워킹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 비즈니스 운영자는 사업 필요에 맞는 솔루션이나 기능을 찾아 자신의 회사에 활용할 수 있다. 파트너는 솔루션을 개발해 데브넷 생태계에 제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수지 위 CTO는 웹 서밋 앱을 예로 들었다. 시스코라이브 같은 대형 이벤트 전용 애플리케이션은 행사장 내부 지도를 제공해야 한다. 컨퍼런스 행사장 내부 지도를 만들 때 와이파이와 유선인터넷 등의 네트워크 설비까지 안내할 수 있는데, 앱 개발자가 네트워크 인프라 구성까지 이해해 접목하기 어렵다. 데브넷 DNA센터는 이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시스코 머라키와 에어로넷 API를 제공하는 맵와이즈란 API 덕분에 현장에 하루만에 새로 구축된 네트워킹 환경을 앱의 지도에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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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시스코는 기존 네트워킹 엔지니어에게 편리한 프로그래밍 도구를 제공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많은 네트워킹 엔지니어가 더욱 워크로드 구축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자동화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를 API로 만들어 '네트워크 개발자'에게 설파하고 있다.

시스코는 네트워크 진화의 필요성을 어느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AT&T를 비롯한 핵심 통신사업자와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사업자가 시스코의 네트워크 하드웨어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리눅스와 소프트웨어 개발력이 어느때보다 네트워킹 영역에서 강한 압박을 주고 있다. 네트워크 개발자를 양성하려는 시스코의 행보가 앞으로도 성공적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