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게임만 좋아한답니다

[이균성 칼럼] 사랑하는 박형께

데스크 칼럼입력 :2018/06/07 09:52    수정: 2018/11/16 11:20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요즘 날씨 참 좋습니다. 볕은 따뜻하고 그늘은 더 없이 상쾌하네요. 우리 사는 것도 이 날씨 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로 바쁘겠지만 조만간 시간 내어서 박형 좋아하는 바다낚시 한 번 같이 가십시다.

지난겨울 속 좁은 마음으로 박형께 결례를 한 것 같아 못내 찜찜해 하다 이제라도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요.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게 자식농사라 하지 않습니까. 그 때 박형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줬어야 했습니다. 아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자꾸 화제를 돌렸던 게 많이 후회됩니다.

늘 통 큰 놈처럼 굴었지만 결국 밴댕이였던 게지요. 부끄럽습니다, 박형.

다크어벤저3 장면. 이 이미지는 칼럼 내용과 상관 없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기억나실 겁니다. 부자(父子)끼리 이태 전 같이 바다낚시를 갔을 때 보았던 우리 큰 놈. 그 놈은 박형 아들에 비하면 형편없지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과 공부는 전폐하고 게임만 했으니까요. 그때부터 줄곧 공부를 강요하는 것보다 아들 뜻을 존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진짜 생각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아들을 창피하게 생각해왔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지난겨울 속 좁게 놀았던 까닭도 거기에 있겠지요. 박형 아들과 그 놈을 비교하며 술맛 떨어질까 봐 서둘러 딴 이야기를 시키곤 했던 거지요. 지난 몇 개월 그 사실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아들에 대해서 왜 아비가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공부 안 하는 아들이 아니라 아무런 이유 없이 아들을 창피하게 여기는 못된 아비의 심정 아니겠습니까.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더 슬픈 일이 있습니다. 요즘 아들이 자꾸 못 된 아비 눈치를 봅니다. 새벽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설거지를 한다거나, 빨래를 개고 넌다거나, 어미가 우울해보일 때 같이 대작을 한다거나. 이제 철이 들었구나, 하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인 눈치 보는 강아지 같아 마음이 짠합니다. 기죽인 일이 없는데도,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기가 죽어 그럴 거라는 생각 때문이죠.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문제는 박형 아들보다 그 놈 같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진로 못지않게 학과 공부보다 다른 걸 더 좋아하는 아이들의 앞날이겠지요. 민주도 좋고 평화도 좋고 경제도 좋지만 우리 사회에 진짜로 부족한 게 그거 아닌가 싶습니다. 학과 공부 아니어도, 할 수 있고 배워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학교가 그런 것 같아요. 우리 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외에 가르칠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특히 예체능이 그렇지요. 예체능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진로를 알고 고민하는 교사나 학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 아이들을 모아놓고 통째로 문제아 취급하는 학교는 많아 보입니다만. 예체능 뿐 아니라 각종 기능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고민하는 학교나 교사는 거의 없죠.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그 놈은 이제 프로 게이머의 길은 포기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게 게임이지만 프로가 되기에는 뭔가 필요한 근육이 약하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 같아요. 대신 요즘엔 소설이나 영상 제작 쪽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어미 피가 조금은 흘러간 모양입니다. 소설은 아직 보지 못했고 영상은 두어 편 봤습니다. 그래봤자 아마추어 작품이지만 첫 창작품인 만큼 소중하게 잘 간직하길 바라고 있지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형!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기 무색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성큼 왔고 그 결과로 우리는 물론 아이들 일할 공간이 갈수록 협소해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친구들을 낙오시키며 마침내 자신의 설 자리를 차지할 용감한 전사로 아들을 키워낼 방법이 없는 우리 부부에겐 더 걱정이 많지요. 이 환경밖에 만들지 못한 것이 참 부끄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뭔가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있다는 걸 믿습니다. 그리고 그걸 하며 행복해하길 바랍니다. 상품성은 떨어지고 큰 돈 벌지 못할 가능성이 많겠지만 오래 고민하고 깊이 생각한 뭔가가 다른 이의 공감을 살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맛보기를 고대합니다. 승리하는 삶이 아니라 공감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일시적인 승리의 쾌감보다 지속적인 공감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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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술이 약합니다. 소주 한 병 마시면 그 자리서 졸지요. 그래도 같이 한 잔 하십시다. 바다에 찌 던져 놓고, 물지 않는 고기 기다리며, 소주 한 잔 들이키고, 우리 아들들 이야기 몇 시간이고 들어보십시다.